"서울대생과 부랑인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재판' 시작…30여년만에 피해자 명예회복 기대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10-15 오후 5:28:54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서울대 다니는 지성인'과 '시설에 갇힌 부랑인', 인간의 권리에 대한 평등이 이뤄지고 있는가." 
 
15일 '한국판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 재판이 31년만에 대법원(주심 안철상 대법관)에서 다시 열렸다. 이날 피해자 측 대리인으로 참석한 박준영 변호사가 법정 내 PPT를 띄운 뒤 준비해 온 진정서 일부를 낭독했다. 피해자 강신욱씨가 34년 전 작성한 진정서다. 강씨는 1년8개월 동안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 당했다. 
 
박 변호사는 진정서 낭독 후 "(형제복지원에서)500명 넘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일부는 시신이 돼 팔려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인권유린이 1987년 알려졌습니다. 같은 해 민주화를 크게 앞당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발생'이 발생했고 전 국민의 관심과 이목이 이 사건을 주목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잊혀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절절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호소는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지워졌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묻습니다. 과연 인가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박 변호사는 '후유증·원망·원통·죄책감' 등 단어로 정리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이어 소개했다. "원망 : 동네 형들과 수영하러 갔다가 부산역에서 기차 기다리다가 잠시 밖에 나와있었는데 끌려갔어요. 내가 부산역 안에 있지 왜 밖에 나와서. 형들 옆에 앉아 있지. 몇 발자국 나와서 내 인생이 바뀌어 버렸어요", "죄책감 : 언니들이 남자 두세명에게 끌려갔어요. 당하고 온 거죠. 제가 열살 때였으니 뭔지 몰랐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너무 미안해요". 후유증으로 몸이 성하지 않은 피해자 40여명이 법정에 함께 참석했다.  
 
이날 법정에 참석한 고경순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비상상고 취지를 설명하고 재판부에 "특수감금 무죄에 대한 부분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 말미에는 재판부가 허용한 발언기회를 얻어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하지 못했다. 가혹행위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하고 특수감금 등 일부만 그쳐 피해자와 가족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이 사건 피해자들을 위로할 방법은 기본권 보장과 법치의 최후 보루 대법원이 이분들의 특수감금 피해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87년 군사정권 동안 발생한 집단인권유린 사건이다.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근무하던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 원생들의 강제노역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이들을 조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부산에 본원을 둔 형제복지원은 수용인원이 3000여명이었으며 무연고자들을 데려다가 불법감금한 뒤 강제노역을 시켰다. 탈출하는 수용자들은 무차별 구타했고 암매장 당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12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2014년 3월 확인된 사람만 551명에 달한다. 김 검사는 폭행, 감금, 성폭행, 사망사건 등 사건 전말에 대한 수사를 주장했으나 당시 검찰 지휘부의 거센 압력 때문에 결국 좌절됐다. 
 
1심 법원인 부산지법 울산지원은 특수감금 및 업무상 횡령죄로 기소된 원장 박인근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인 대구고법은 ‘주간의 특수감금 행위 부분’에 대해 일부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야간의 특수감금 행위’까지도 무죄라고 판시했다. 
 
2018년 9월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확정판결에 대해 비상상고할 것을 권고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당시 비상상고를 제기해 재판이 다시 시작됐다. 비상상고는 형사소송에서 판결이 확정된 후 그 사건의 심리가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했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불복신청을 하는 비상구제제도이다. 대법원은 그 원심판결이나 소송절차가 법령에 위반되었다고 인정할 때에 판결 또는 소송절차의 법령위반 부분을 파기하게 된다. 그러나 재심과는 달리 절차적 효력만 있을 뿐 박인근이 다시 유죄를 선고받지는 못한다. 피해자들의 뒤늦은 명예회복을 기대해 볼 뿐이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비상상고를 '재판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학설'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모씨의 특수감금 등 혐의 비상상고 사건에 대한 공판기일을 마친 후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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