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내가 죽던 날’ 이정은 “여성들만 좋아할 영화 아니길”


“‘대사 없는’ 배역 호기심, 김혜수 출연 ‘곧바로’ 출연 결정”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11-16 오전 12: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아직도 실명보단 국문광이란 기괴한 배역이 더 기억이 남아서 일까. ‘절대 평범한 연기는 못한다란 선입견에 고민이 크다는 배우 이정은이다. 이미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서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를 한 바 있다. 그 이전 여러 작품에서도 작지만 기괴한 배역에 항상 이정은의 이름이 있었다. 일상성이 강한 배역은 정말 스쳐 지나가는순간으로만 존재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생충의 이정은에겐 대중들이 아직도 평범함보단 기괴함또는 특별함을 더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정은이 칼을 간 것 같았다. 그는 숨기지 않았다. ‘대사로 연기하는 게 지루해지던 순간이었다고 호기롭게 전했다. 그 순간 대사가 없는배역이 왔다. ‘대사가 없으니 연기도 쉽겠다란 생각은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듯하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다. 그의 상대역인 천하의 김혜수도 이정은의 연기력에 감탄을 넘어서 탄성을 지른 게 한 두 번이 아니란다. 또 다른 한 참 후배인 어린 상대역 노정의에겐 경외감이었다. 이정은을 캐스팅한 박지완 감독은 오죽 했을까.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이정은을 빼놓고 본다면 속이 텅텅 빈 허풍일 뿐이다. ‘기생충국문광조차 내가 죽던 날순천댁’(이정은)을 본다면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할 판이다.
 
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정말 인연이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단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대사가 있는 연기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몸으로 전하는 감정에 관심이 많았다. 이미 옥자에선 사람이 아닌 상상 속 동물의 소리를 연기한 바 있다. 대사는 구체적이지만 소리는 좀 달랐다. 물론 소리 역시 대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런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첫 번째 연기에 도전했다. 그 도전의 확신은 김혜수였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촬영을 정신 없을 시기였어요. 그때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죠. 대사가 없단 말에 호기심은 생겼지만 고민도 당연히 됐죠. 그런데 혜수씨가 캐스팅됐단 말에 하겠다란 말에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요(웃음). 김혜수란 원톱이 합류하면 많은 부분이 도움이 될 것 같고, 확신도 설 것 같았어요. 연기를 하면서 혜수씨 표정에서 진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하지만 막상 출연을 결정하니, 그리고 막연하게 원하던 대사 없는 배역이 진짜로 주어지자 이거 큰일이다부터 시작이 됐다고. 과거 옥자때는 며칠을 돼지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연구를 했단다. 이번엔 각종 의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목소리에 장애를 가진 분들의 상황과 현실을 보며 연기와 캐릭터 구축에 나섰다. 참고로 영화 속 순천댁은 완벽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게 좀 상상 만으로도 끔찍한 데, 순천댁은 농약을 마시고 목의 성대가 말라 붙어 버린 상태라 소리가 달라야 할 것 같았어요. 사실 순천댁은 한 마디도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태였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마지막 즈음에 목을 쥐어짜서 내는 그 소리. 파열음에 가까운 그 소리에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기억으론 대학 1학년 때, 선배가 저한테 너의 목소리 말고 널 보여봐란 충고를 아직도 기억해요. 그 말을 기억하면서 어떻게 접근할까를 고민해서 나온 장면이에요.”
 
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사실 영화의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이 영화는 또 여성의 얘기로 소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정은은 그건 아닌 거 같다고 선을 긋는다. 그의 단언에 동의를 했다. 스토리가 아닌 감정이 주된 정서인 이 영화는 주연 배우가 여성 3명일 뿐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감정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언론 시사회 이후 평가는 좋다. 그래서 더욱 더 궁금하단다.
 
너무 궁금한 게 관객 분들이 이 얘기를 어떻게 보실까란 점이에요. 솔직한 심정은 여성들만 공감하고 좋아할 영화가 아니었으면 하는 거죠. 뚜껑은 열어봐야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잖아요. 40대 아저씨가 울고 나오실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감정이 저렇다면 관객 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그 얘기가 전달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혜수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이정은이 저랬어?’ ‘노정의가 이랬단 말야?’ 등등. 흥미로운 지점이 정말 많을 영화에요.”
 
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름 김혜수’. ‘내가 죽던 날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이정은이다. 하지만 하이라이트까지 관객들을 끌고 가는 온전한 힘은 김혜수다. 이건 이정은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지점이었다. 반대로 김혜수는 순전히 이정은의 힘에 모든 공을 돌렸다. 이정은이 없었다면 내가 죽던 날은 존재할 수 없던 영화였다고. 이런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명장면은 머리와 가슴을 모두 뒤흔들었다.
 
가장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부둣가 장면인데(웃음). 그때 혜수씨도 그랬지만 저도 이게 영화야? 현실이야?’ 싶었어요. 리허설 때인데, 제가 리어카를 끌고 가서 혜수씨를 만나는 데 그 눈빛이 내게 뭘 물어보려온 눈빛이 아닌 거에요. 순간 뭐랄까. 내 속마음이 들킨 듯한 그런 게 확 왔어요. 혜수씨와 저 둘 다, 격한 감정에 휘말려서 손을 맞잡고 울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그만하시고 영화 찍읍시다라고 하셔서 현실로 돌아왔죠. 하하하.”
 
이정은은 니가 널 구해야 돼란 영화 속 대사, 그 한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걸 말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 대사의 무게감, 그 무게를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사실 더 가슴 깊게 다가온 건지도 모른단다. 그리고 그런 무게는 무겁기도’ ‘가볍기도우리 모두의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아니냐며 또 반문했다. 그 무게를 덜어주는 얘기가 바로 이 영화, ‘내가 죽던 날이라고.
 
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10년 정도 됐어요. 당시 건강이 정말 안 좋았어요.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을 때였죠. 그때 다니던 한의원의 선생님이 인생 길다’ ‘나아질 수 있다라며 용기를 주셨어요. ‘그래, 내가 날 구해야지란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스스로 일어설 힘을 얻었던 거 같아요. 그때 이후부터 주변에서 힘들어하고 상처에 고민하는 분들에게 스스로 일어날 각오부터 하라고 조언도 해줘요. 아무리 손을 내밀어줘도 본인이 먼저 일어서야 하잖아요. 만약 힘이 드신다면 몸과 마음을 다잡으세요. 저희 영화를 안보셔도 이건 제가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당신을 잡아 줄 손은 분명히 있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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