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총액 먼저 정하는 탑다운…의원 몇 명이 끼워넣기 못해"


1970년대 재정적자로 예산 결산심사 절차 바꾼 미국…"한국도 채무 심각해지면 바뀔 가능성"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11-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미국은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이지만, 예산 편성권을 행정부가 아닌 의회가 갖고 총액을 먼저 정한 뒤 세부 항목을 계산해가는 방식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처럼 예산 심사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 예산을 끼워 넣기 위한 '쪽지'가 난무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산 지출 세부 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예산 법률주의'는 한국 외 주요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22일 논문과 보고서, 전문가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예산 제도를 한국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행정부의 예산안을 참고 삼아 의회가 직접 예산안을 편성한다는 점 △예산안 총액과 분야별 총액을 먼저 정하고 세부 항목을 조율해가는 '탑다운(top-down·하향식)' 방식 △세부 지출 항목과 방법을 법률로 정하는 예산 법률주의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예산 제도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의회의 독자적인 예산 편성권과 총액 먼저 정하는 '톱다운(하향식)' 방식, 예산법률주의 등이 꼽힌다.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 내부. 사진/AP·뉴시스
 
우선 9월 정기국회 시작에 맞춰 행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국정감사 이후 11월쯤부터 심사에 들어가는 한국과 달리, 미국 행정부는 2월 첫째 월요일까지 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 한국은 행정부가 짜온 예산안을 의회가 심사하는 구조이지만, 미국에서는 행정부 예산안은 참고사항일 뿐 의회가 무제한의 수정 권한 또는 독자적 예산 편성권을 갖기 때문이다.    
 
미 의회에 행정부 예산서가 제출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예산위원회의 총액 심사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하나만 두고 있는 한국 국회와 다르게 미국은 예산위원회가 한 해 예산안 총액을 결정하고 나면 이를 기준으로 분야별 세출위원회가 국방, 외교 등 각 기능별 세출액을 가른 뒤 다시 각각의 세부 항목을 정해가는 '탑다운' 방식으로 예산안을 짠다. 세부 항목을 심사하다가 결과적으로 총액이 나오다보니 예산 심사 과정에서 증액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한국의 '다운톱'과는 정반대다. 
 
이후 예산 법률주의에 따라 일반 법과 마찬가지로 세출법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 어느 분야에 얼마의 예산을 쓰고 지출 시 어떤 항목을 지켜야 할지까지 처음부터 구체적인 법률로 정한다. 이에 예산 편성부터 지출까지 '마이크로(세세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렇게 총액을 확정하고 세부 항목을 법률로 정하다 보니 예산 심사 과정에서 몇몇 의원이 밀실 속 소위 '쪽지'를 주고받으며 지역구·민원 관련 예산을 찔러 넣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 의회 근무 경험이 있는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총액을 먼저 정하면 예산이 심사과정에서 지나치게 늘어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며 "미세 예산을 심사하다 결과적으로 총액이 나오는 방식은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 예산을 통제할 필요가 생기는데, 미국도 국가적자가 심각해지면서 1970년대에 예산결산심사 절차를 바꾼 것처럼 우리도 채무가 심각해지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 직원들이 의석배치도 모니터를 통해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의회가 예산안을 면밀하게 심사하기보다는 민원 예산 '끼워 넣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총액 논의 등 편성과정에서 처음부터 행정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인 점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권위주의 유산이 아직 남아있어 대통령 예산안이 오면 그걸 심사하고 국회가 예산을 늘리려면 행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구조"라며 "여전히 대통령 행정부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나치게 행정부의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경향이 있고 특히 선진화법 통과 이후 어차피 예산안은 통과된다는 생각에 더더욱이나 심사를 (제대로) 안한다"며 "톱다운이 아니고 다운톱이다보니 총액을 얼마로 가져갈 지에 대해서는 우리 국회에서 논쟁이 안 된다는 문제도 있다"고 꼬집었다.  
 
프랑스도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표방, 의회는 예산편성·발의권 없이 심의·확정 과정에서 행정부 예산안 수정에 한국만큼 제약을 받는 국가다. 그러나 예산 법률주의에 따라 예산을 법률로 정하고, 예산 편성 단계에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포함해 사전심의를 하는 '공공재정정책방향협의회(DOFP)'를 제도화 한 점은 한국과 다른 부분이다. 
 
미국과 프랑스 외에도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상당수가 예산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는 예산에 대한 의회권한을 헌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과 스웨덴 등 일부 '예산비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도 있지만, 대통령제 국가로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참고자료
<주요국의 예산제도, 국회예산정책처>
<재정헌법 개정에 대비한 의회예산제도 국제 비교분석: OECD 국가를 중심으로, 주희진 경기연구원>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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