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주 52시간 근무…제약업계,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


공식 입장은 '준수', 실상은 '모르쇠'…"수당 없어져 업무환경 되레 뒷걸음질"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07-05 오후 4:26:50

[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제약업계의 미온적 반응에 영업사원들이 울상 짓고 있다. 관련법 개정에 맞춰 기업들은 저마다 탄력근무제와 대체 휴무 등 합리적 근무 체계 도입을 발표했지만, 실제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제약영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달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약속했던 제약사들이 하나 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기존 근무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법 개정에 맞춰 시행 자체가 의무화된 만큼 공식 입장은 근무시간을 준수하는 척하면서, 영업사원들에겐 자발적 초과근무를 강요하는 식이다.
 
기존 68시간까지 가능했던 주간 근무시간은 지난 1일자로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52시간(300인 이상 기업 기준)으로 변경됐다.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으로 동일하지만 연장근무(12시간) 및 휴일근로(16시간)가 합계 12시간으로 제한되면서 16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 역시 제도 시행에 앞서 대체 인력 고용 및 대휴 적용, 탄력근무제 도입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 일선에 있는 영업사원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A제약사에 8년째 영업사원으로 근무 중인 B씨는 지난달 그야말로 '신세계'를 맛봤다. 회사가 이달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범 도입차원에서 공식적 회식을 일제히 없애고, 학회나 제품설명회 등에 할애한 야간 및 주말시간은 주중 대체휴무로 보상해줬기 때문이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식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겠다는 공문도 내려왔다. 하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향상으로 부풀었던 B씨의 기대는 이번 주 팀장을 통해 전달된 '영업사원들이 성과 달성을 위해 하는 초과 근무는 회사에서 시킨 적이 없으니 인정해 줄 수 없다'는 회사의 말바꾸기에 무너졌다. 
 
B씨는 "결국 전산 기록으로 남는 공문에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는 것처럼 남겨두고 실제론 초과 근무가 영업사원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업무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격"이라며 "영업직의 경우 (초과 근무는) 의무적 목표 성과가 있고 달성도에 따라 인센티브나 향후 임금 협상이 갈리는 만큼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비슷한 C제약사의 D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오히려 근무환경을 뒷걸음질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D씨는 "성과달성을 위해 초과근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법망을 피하기 위해 회사가 공식적으론 초과근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기존 특근에 지급되던 수당도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같은 행태는 현장 출퇴근이 잦은 제약영업 특성을 악용한 것이다. 가뜩이나 GPS위치추적을 통한 '콜(call)'로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영업사원을 제약사가 간주근로자로 정의하면서 근로시간 인정 수준을 놓고 논란이 일던 상황에서 불가피한 주말 및 야근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하자 현장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간주근로(시간)제란 일과 대부분을 사업장 밖에서 보내는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소정근로시간까지만 인정하는 경우다. 회사는 간주근무 소정시간을 8시간으로 한정할 수 있으며 노사합의에 따라 10시간 또는 그 이상도 인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대적 약자인 데다 체계화된 노조도 부족한 영업사원들 입장에서 사측에 인정 근무시간 인정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근오 공인노무사는 "개정법 시행 초기라 주 52시간 근무제와 간주근로제 적용에 대한 다양한 유권 해석이 존재하고 있어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 관련 논란을 가장 명확히 정리할 수 있는 건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어느 부분까지 인정하느냐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 정도"라고 설명했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 영업사원들의 '워라밸'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 사진/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