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몇푼 더 준다고 아이 낳겠습니까?"


"저출산대책, 여전히 '현금' 위주…정책패러다임부터 바꿔라"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07-11 오후 4:02:39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1. 서울 송파구에 사는 노모(37)씨는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을 그만둬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의 손길이 더욱 필요해졌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경쓰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면서 "남편이 둘째 아이도 원하는데, 출산장려금이 늘어나도 돈 몇 푼 더 받는다고 둘째 아이를 낳을 순 없다"고 했다. 그는 "일·가정 양립은 커녕 하나라도 제대로 가꿔나가면 다행"이라고 토로했다.
 
#2. 경기 성남시에 사는 이모(30)씨는 결혼 2년차로 2세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싶긴 하지만, 경력단절 위험, 독박육아의 공포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정부 대책도 끊임없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그는 "경제적 지원 같은 단기 처방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사회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직장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이 직장맘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최근 새로운 저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출산·양육 지원 등 비용 정책보다는 일·가정의 양립, 성평등 관점에서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130조원에 가까운 재원을 쏟아부었지만,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프레임이 현금 지원 등 기존의 재정투입식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저출산 대책에는 출산과 영유아 보육 등 정부 예산을 연간 9000억원씩 더 투입하는 방안이 담겼다. 출산 지원에 5000억원, 보육 지원에 3000억원, 한부모 가정 및 비혼 출산 가정 지원 700억원 등으로 짜여졌다.
 
저출산 대책의 내용을 들여다봐도 기존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현금 지원 등 비용 중심의 대책으로 이뤄져 있다. 특수고용직·단시간 근로자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 5만명에게 출산지원금 월 50만원 지원, 1세 아동의 외래 진료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경감, 임신시 50만원이 지급되는 국민행복카드 지원금 인상 등이 주된 내용이다.
 
때문에 이번 대책도 지난 10여년간 나온 비용 지원 중심의 출산·양육 정책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현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은 "찔끔찔끔 돈만 더 주는 출산급여, 획기적인 공급자 계획이 없는 아이돌보미 사업, 그림의 떡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조치 등 지난 10여 년간 비슷하게 봐왔던 정책들"이라며 "돈으로만 무조건 해결해보겠다는 저출산 정책, 10년간 이게 아니라는 빨간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흔적들만 난무하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대책 발표 이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어떻게 저출산 대책에 여성 경력단절 언급이 없나. 그게 핵심 아닌가", "아직도 출생률을 결혼과 연관 짓는다. 소위 '정상가정' 아이만을 원하는 것", "저출산 문제는 돈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등 누리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대책이 단기처방에 그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창준 기획조정관은 "출생아 수 감소 속도가 너무 빨라 이 속도를 완화하는 단기 대책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지속 검토하고, 근본적인 정책 방향은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재구조화해 올해 10월 수정 사항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프레임이 비용 중심에서 일·가정 양립, 성평등 등 구조 중심의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효미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비용 지원 중심의 보육 지원을 넘어선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의 강화가 요구된다"며 "맞벌이 가구를 위한 보육 사각지대 해소 뿐 아니라 맞벌이 가구의 부모권 확대를 위한 지원 정책, 즉 유연근무 및 탄력적 근무시간제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성평등 관점에 기반한 저출산 대응 정책의 프레임이 필요하다"며 "노동시간과 가족 시간의 균형, 가족 내 젠더관계의 변화, 남성의 돌봄 참여 등 의제들에도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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