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당신들의 아시아나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07-12 오후 3:26:24

최근 사진 및 동영상 기반의 플랫폼 인스타그램에서는 언박싱(unboxing) 영상 올리기가 한창 유행이다. '상자를 연다'는 의미의 언박싱은 주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 가방 등 명품을 구매해 개봉 과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맞게 '허세'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본지가 12일자 1면에 보도한 '재벌 3세 놀이터 된 아시아나 비행 시뮬레이터' 기사를 보면서 재벌가 버전의 언박싱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박삼구 회장의 장남으로, 장차 금호아시나그룹을 이끌어가게 될 박세창 사장은 지난 2012년부터 2013년 사이 재벌 3세 모임 회원들을 아시아나항공으로 불러들여 비행 시뮬레이터를 체험케 했다. 그들의 허세 스케일에 대한 놀라움 한편으로 재벌 3세들의 그릇된 사유화 인식에 갑갑함이 느껴졌다.
 
그들의 모임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왜 하필 '그곳'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박 사장은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는 그가 회장의 장남일 뿐, 회사와는 무관한 위치였다. 박 사장이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경험케 한 장비는 박 회장 일가가 아닌 아시아나항공 재산이다. 그런데 대당 200억원을 호가하는 비행 시뮬레이터가 재벌 3세들의 오락용 기기로 전락했다. 시뮬레이터는 조종사의 비행능력 향상과 예비 조종사 훈련을 위해 도입됐다. 조종사 육성기관과 학교 등 대외기관의 공식 요청이 있으면 검토 후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조차 흔치 않다. 더군다나 박 사장 일행의 시뮬레이터 사용은 아시아나항공이 말한 그 어떤 명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박 회장을 향한 안팎의 비난이 기세를 더하는 가운데 그간 논란에서 한 발 빠졌던 박 사장마저 재벌의 사유화 인식을 보여주는 갑질 행태가 드러났다. 옆집 경쟁사로 눈을 돌리면 그 모든 비극은 철부지 막내딸의 물컵 갑질에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조양호 회장 일가는 물론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그 화염이 금호아시아나로 옮겨 붙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기내식 대란을 야기했던 박 회장의 경영 실패와 함께 전근대적 갑질을 성토하고 있다. 그룹 재건이라는 총수 사욕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임직원들의 땀과 눈물이 쓰여야 했고, 여성 승무원들은 박 회장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꽃다발을 바치고, 팔짱을 껴야 했다.
 
더 이상 우리사회는 재벌의 일탈을 용인하지 않는다. 돈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알량한 특권의식은 대중과의 괴리만 키울 뿐이다. 이제 박 사장이 답할 차례다. 그 답은 반성과 과거와의 단절이길 기대해 본다.
 
양지윤 산업1부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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