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 ‘미쓰백’, 이게 현실이라 더 고통스럽다


상처투성이 두 여성, 사건이 아닌 상황 응시한 연출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0-02 오전 9:22:3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너무도 퍽퍽하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다. 세상이 이런 곳이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죄악이다.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김일곤(백수장)은 부서질 듯 위태로운 딸 지은(김시아)에게 냉소적이다 못해 무감정의 폭력을 입으로 전한다. 차라리 육체적 폭력의 고통이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 받고 물려 받은 딸 지은에게 일곤은 그렇게 살아서 뭐하냐,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냐라며 견디기 힘든 폭력을 행사한다. 나이를 가늠키 힘든 지은은 폭력에 길들여 진 듯 하다. 그저 때리니 받고 있는 것 같다. 묵묵히 견딘다. 그 견딤의 광경이 보는 이들에게 고통이다.
 
 
결과적으로 그 고통은 지은의 몫이 아니다. 관객들을 향한 폭력이다. 그 폭력은 시절의 냉소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의 단상이다. 우리는 이런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이를 앙다물고 버티고 버티는 지은이다. 버틸 수 있어서 버티는 게 아니다. 버텨야 하니 버텨는 것처럼.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 줄 그 바람을, 그 희망을 그리면서. 그럼에도 견디기 힘든 것은 단 하나다. 폭력에 길들여진 지은도,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단 하나. 그것 때문에 견디기 힘들고 버티기 힘들다. 내 편이 없다. 이 세상 단 한 사람, 아빠에게도 버림 받은 지은이다. 폭력으로 고통으로 길들여 진 삶이,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버석거리는 먼지가 휘날리고 온 몸에 칼집을 내듯 파헤치는 한 겨울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베란다 콘크리트 바닥. 그렇게 지은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던 지은 앞에 어느 날 희망이 나타났다. 아니 사실 지은은 그 희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컴컴하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화장실 작은 쪽 창문 너머의 그 여자를. 바로 미쓰백’(한지민)이다.
 
영화 미쓰백에는 두 여성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된 어린 아이 지은이다.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얼굴과 속내를 숨긴 채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 미쓰백’. 영화는 지은이가 미쓰백이 서로를 구원하고 서로를 지켜가는 모습을 한 발 짝 떨어져서 관조한다. 그저 쳐다본다. 그저 바라본다. 그래서 때로는 보는 관객들이 고통스럽다. ‘이게 바로 세상이다고 하는 것처럼 미쓰백의 속 세계는 희망도 구원도 고통에서 벗어날 돌파구도 없다. 그저 그 돌파구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이라면 형사 장섭(이희준) 뿐이다. 미쓰백과 지은 두 사람을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영화 '미쓰백' 스틸. 사진/(주)리틀빅픽처스
 
 
본명 백상아’, 미쓰백은 상처를 안고 산다. 그 상처는 친모에 대한 아픔이다. 그는 버려졌다. 버려진 것에 대한 기억은 미쓰백에게 상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남겨놨다. 영화에선 그 깊이를 쉽게 가늠키 힘들다. 그럼에도 그 깊이가 어렴풋이다가오는 것은 배우 한지민의 얼굴에서다. 언제나 예쁘고 언제나 사랑스럽게 언제나 행복한 이미지로만 작품 속에서 살아온 한지민은 이번 미쓰벡을 통해 전혀 다른 얼굴을 선보인다. 푸석거리는 피부톤, 차가운 겨울 바람에 얼어 붙은 양볼, 감정을 가슴 속 깊은 바닥으로 끌어 내린 채 애써 숨기는 눈빛, 그럼에도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아우라의 톤은 배우 한지민의 존재감을 다시금 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 얼굴, 그 표정, 그 눈빛 하나가 영화 미쓰백속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다.
 
김지은, 나이를 알 수 없는 어린 여자 아이다. 한 겨울 누더기 옷으로 홀로 길거리에 나와 앉아 있다. 칼 바람 속에 온 몸을 떨며 견딘다. 사실 견디는 게 추위인지 고통인지 외로움인지 모르겠다. 손톱과 발톱에 낀 시커먼 때는 한 눈에 봐도 이 어린 여자 아이가 흘린 고름의 흔적이다. 커다란 스크린에 잡힌 이 모습 하나 만으로도 관객들의 오감은 진저리가 쳐질 듯 하다. 이제 겨우 11세에 연기 경력이 전무한 이 어린 아역 배우가 그려낸 김지은이란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상상 그 이상의 고통과 반성과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김지은이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김지은이란 이름의 여러 아이들의 추위와 고통과 외로움을 외면하고 살아간다. 무감각하고 무표정하고 매 마른 듯한 눈빛과 작은 떨림 하나 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하는 이 아역 배우의 소름 끼치는 표현력이 영화속 연기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영화 '미쓰백' 스틸. 사진/(주)리틀빅픽처스
 
 
두 사람에겐 공통된 결여가 있다. 바로 부모다. 부모는 보호이고 사랑이고 관심이고 소통이며 울타리. 그런 모든 것이 이 두 사람에겐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그들은 세상에 버려졌다. ‘미쓰백은 그 모든 것을 지은을 통해 보상하고 씻어내려 한다. 자신을 옥죄던 트라우마의 진실을 알게 된 뒤, 아니 지은을 통해 망설여지던 심연 속 그 갈등을 끌어 올린 뒤 정면으로 마주한다. 외면하고 싶었고 피하고 싶던 현실을 결국 마주보게 된다. 사실 고통에 허우적대던 지은은 결과적으로 미쓰백을 구원한 시작이 되는 셈이다. ‘미쓰백이 어린 지은을 구하고 보듬고 손을 잡지만 사실 지은이 미쓰백의 손을 잡고 보듬고 구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자신들에겐 허락되지 않던 그것을 위해 서로를 마주본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장섭의 존재감이 말한다. 관심이다. 우리 주위에는 수 많은 미쓰백이 있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지은이가 있다고. 그래서 장섭의 존재 역시 흘려 보지 못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영화 '미쓰백' 스틸. 사진/(주)리틀빅픽처스
 
 
미쓰백상아의 과거 속 진실이 다소 작위적이고 미화의 측면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폭력의 행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그 진실이 사실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정당함이 인정될 수 있을까. 이 질문 하나만 놓고 본다면 영화 미쓰백은 현실의 민낯과 감추고 싶은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한 날카로운 시선이 잠시 흔들린 것일 뿐이다. 그 흔들림을 오점으로 지적하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있기에 영화 미쓰백속 상아와 지은은 어쩌면 지금도 계속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시선이 머물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고 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쓰백 98분의 시간 동안 누구라도 정면으로 응시하기 힘든 현실인 셈이다. 개봉은 오는 11.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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