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핵·기후변화·디지털독재…21세기 ‘정치의 지구화’가 필요하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보는 ‘인류의 오늘’…"기술 흡수 앞서 우리 자신부터 이해해야"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0-04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유발 하라리는 10대 시절을 무수한 고민의 잔해들과 섞여 지냈다. 인생에 관한 그의 질문에 속 시원히 답을 해주는 이는 없었고,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왜 세상과 나 자신의 삶에 그토록 많은 고통이 있는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것은 모두 정교한 허구들이었죠.”
 
고통에 집중하던 하라리가 마주한 건 인류 역사를 지배해 온 이야기들의 ‘현실 왜곡’이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명백한 ‘팩트’였으나 현실을 마치 허구적인 영웅담으로 각색해 분란과 갈등을 조장해댔다.
 
“가령 ‘1931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고 하면, 이 말은 마치 일본과 중국이 현실 속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또 ‘삼성이 지난해 현대보다 달러를 더 많이 벌었다’고 하면, 이 말은 마치 삼성과 현대, 달러가 현실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지난해 서울 정동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을 찾아 내한 기자간담회를 가진 유발 하라리. 사진/뉴시스
 
하라리에 따르면 국가, 기업, 돈 같은 광의의 대상은 이야기의 실제적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엄밀하게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전쟁에서 패한 중국 병사, 파산을 당한 실업자 등 ‘고통을 직접 느끼는 대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무생물 주어로 일반화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화되고, 저마다의 상상의 영역에서 해석된다.
 
들불처럼 번지는 민족주의(고립주의) 물결과 테러리즘의 기승, 전염병처럼 유행하는 가짜뉴스 등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 역시 하라리는 이런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한다. “책('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동일합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사건들의 심층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하라리에 따르면 오늘날까지 인류를 끌어온 ‘자유주의 이야기’는 역사에 종언을 고할 위기에 처해있다. 기술적 파괴와 생태학적 붕괴의 융합 현상이 고개를 치켜들면서 기존 사회·정치 모델의 개념이 전복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대대적인 기술 혁명은 수십억 인간을 ‘무용(쓸모없는) 계급’으로 만들거나 개개인의 정신, 마음을 해킹하는 등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격변을 초래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인류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마차 시장에서 퇴출된 ‘말’의 운명을 맞거나 소규모 슈퍼휴먼(부를 통해 유전적으로 증강된 인간 그룹)과 나머지 계층으로 양분되는 ‘종의 분화’를 맞을 수 있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사진/김영사
 
다만, 하라리는 편향적인 미래 전망은 경계하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델을 최대한 속히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 아래 ‘정치를 지구화’하려는 공동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고 ‘세계 정부’를 수립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 나라나 심지어 도시 단위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도 전 지구 차원의 문제와 이익에 좀 더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라리에 따르면 기술 문제를 비롯 핵 위협과 기후변화 등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은 과거에 비해 전 지구적인 성격이 훨씬 커졌다. 한국이 유전공학을 이용한 아기 출산을 금지한다 해도 다른 국가들이 킬러 로봇을 생산하고 유전적으로 증강된 슈퍼휴먼을 만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라리는 향후 국가 간 협력 가능성이 수월하지 않으리라 본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서다. 세계 1, 2차 대전을 비롯한 모든 인류사는 제 아무리 '현명한 일'이라 해도 제 각기 이해관계에 따라 끝없이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그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구를 끝없이 되뇌인다. 우리 인간이 어리석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를 교정해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난 세기 우리 인간은 우리의 외부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얻었고 전 지구를 바꿔놓았습니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다가오는 세기에도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는 재앙으로 이어질 겁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