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깊어가는 가을밤, 샘 스미스식 ‘사랑 예술’에 젖다


데뷔 후 첫 내한한 샘 스미스…고척돔 2만 관객과 교감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0-10 오후 12:01:4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산산조각 나더라도 계속해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보다 강한 건 무엇이란 말인가(what is stronger than the human heart which shatters over and over and still lives)."
 
2만여명 앞에 놓인 블랙 스크린에 멋 드러진 하얀색 필기체가 흘겨지고 있었다. 사랑에 기뻐하고, 상실에 아파해본 사람이라면 세계적인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루피 카우르가 남겼다는 이 말을 쉬이 흘려 보낼 수 없었을 터다.
 
이윽고 삶의 모험적 시각으로 사랑을 바라본 소설가 마이클 커닝햄이 바통을 이어받고, 수많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인류사 선배들이 철학적 담론을 정 중앙 스크린에 뿌려댔다. ‘샘 스미스를 보러 온 여러분들도 사랑 때문에 아프고 힘드셨나요?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풀어 봅시다뒤범벅된 언어들의 향연은 읊조리듯 그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던 지난 10일 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세계적인 가수 샘 스미스의 공연은 시작 10분 전부터 그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공기로 뒤덮이고 있었다. 평소 사랑과 이별, 동성애자로서의 고민 등을 음악으로 풀어온 그 답게 스미스는 자신이 채집한 사랑관을 공유했고, 이를 곧바로 자신의 음악적 스토리 줄기로 이어나갔다.
 
"오늘 밤 우리의 핸드폰을 끕시다. 그리고 별들에 의존해봅시다. 우린 최근에 너무 지쳐버렸잖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렸지."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의 첫 구절이 격언들을 대체하면서 관객을 스미스식 사랑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잠깐의 암전 뒤 하얀티에 하늘빛 정장을 멋스럽게 입은 스미스는 신사답게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9일 서울 고척돔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샘 스미스. 사진/현대카드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거대한 삼각뿔과 그 가운데에 둥근 달처럼 걸린 스크린 엘이디(LED)는 사랑에 관한 그의 서사를 한층 더 성스럽게 꾸며주었다. 4명의 합창단원과 원 라스트 송(One Last Song)’을 부른 그는 관객들과 함께 아임 낫 디 온니원(I’m Not the Only One)을 열창했다.
 
여느 내한스타들이 공연 중반부에 멘트를 시도하는 것과는 달리 스미스는 공연 초반부터 첫 내한에 대한 소감과 한국 팬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오 마이 갓니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첫 내한 공연을 하는 꿈을 이룬 날이네요.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이틀 전 한국에 왔는데 서울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습니다. 제 음악은 가끔 우울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오늘 밤 만큼은 여러분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쇼가 되길 바랍니다.”
 
9일 서울 고척돔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샘 스미스. 사진/현대카드
 
샘 스미스는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인 팝스타 반열에 우뚝 올라선 가수다. 2014년 첫 앨범 인 더 론리 아워(In The Lonely Hour)’로 대중과 평론가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고, 이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최우수 신인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특히 동성애자로서 아픔을 서정적인 음악으로 그려온 그는 사랑에 관한 한 섬세하고 철학적이다. 이날도 남자를 사랑하는 속내를 신과 아버지에게 힘겹게 고백하는 (HIM)’을 부르면서도 그는 사랑에 대한 여러분의 방식을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고 외쳤다.
 
스미스식 연가는 기본 밴드 사운드와 가스펠적 합창단의 화음을 베이스로 자신의 팔세토식 창법에 조화시키는 구성이었다. 사랑의 달콤함과 이별의 씁쓸함을 감싸안 듯, 깊어가는 가을밤의 애수를 감미롭게 노래했다.
 
암전된 상태에서 홀로 독백을 하듯 부른 너바나(Nirvana)’, 스미스의 목소리에 맞춰 관객들이 핸드폰 불빛을 수놓았던 래치(Latch)’, 가스펠 멤버 한명 한명이 전면에 나서 노래한 변주적 느낌의 베이비, 유 메이크 미 크레이지(Baby, You Make Me Crazy)’ 등 고척돔은 소울풀한 그의 서정으로 물들었다.
 
9일 서울 고척돔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샘 스미스. 사진/현대카드
 
중간 중간 템포가 빠른 일렉트로 계열의 음악에 분위기가 달아오른 순간도 잦았다. 멤버들과 함께 요리 조리 몸을 돌려가며 춤을 췄던 리스타트(Restart)’, “관객들의 믿기지 않는 힘을 보고 싶다며 부른 프로미스(Promises)’ 등은 앉아 있던 관객들 마저 자동으로 일으켜 세웠다.
 
음향 시스템은 스미스의 사운드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사전에 미리 조율됐다. 공연 주최 측인 현대카드는 스미스는 이번 공연의 음향을 직접 세심하게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시작 전까지 추가적인 음향 장치를 설치하는 등 음향 컨트롤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2시간에 걸쳐 18곡을 소화한 뒤 잠시 무대 뒤로 나간 그는 관객들의 앵콜 요청에 검정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정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와 함께 노래를 불러줘서요. 조만간 서울에 꼭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팰러스(Palace)’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를 관객과 함께 열창한 스미스는 무대 위에 걸터 앉아 삶의 고백을 진정성 있게 읊조렸다. 전쟁으로 잿빛도시가 된 이라크를 방문한 뒤 자신이 본 삭막한 세상과 사람들의 자유, 기원을 노래한 곡 프레이(Pray)’가 돔에 울렸다.
 
고개를 들었는데 세상은 불에 타고 있네요. 제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고 제 뼛속에는 무서움이 있어요.’ ‘전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할 거에요/ 한 가닥의 희망을 위해 그럴거에요/ 전 당신을 믿어본 적 없지만
 
9일 서울 고척돔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샘 스미스. 사진/현대카드
 
현대카드가 주최한 공연은 샘 스미스와 팬들 간 문화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 전 현대카드는 한글날을 맞아 스미스의 한글 이름 짓기 대회를 열었다. ‘마음 심, 기쁠 희, 빼어날 수를 축약한 심희수란 이름이 당선됐고, 이 글자가 새겨진 족자와 부채를 선물받은 스미스는 기념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또 공연에 앞서 스미스는 첫 한국 방문을 기념해 서울 홍대와 경복궁, 광장시장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공연 당일날에도 공연장 주변 풍경과 대기실 모습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