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대하여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0-11 오전 9:28:46

TV에 90년대가 많이 나온다.
모든 문화가 90년대에서 멈춘 것 같다.
잘나가는 배우도 가수도 90년대 스타 출신이다.
왜 TV는 90년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90년대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누군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포장한다.
전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리버럴리스트의 귀환이라고 한다.
물질적 부도 90년대에 장악한 사람들이 지금도 버티고 있다.
문화권력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세기말. 경험해 보지 못한 복잡한 사건이 발생했다.
20세기를 10개의 뉴스로 요약하다면 1위가 소련의 탄생이다.
1위를 갈아치운게 소련의 종말이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었다.
시인들은 펜을 내려놓았다.
조물주가 답을 줬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따위는 없단다"라고.

X세대라고 정의내렸다.
'알 수 없음'이 아니라 '답이 없다'는 뜻이다.
Y세대가 뒤따랐다.
"왜 내게 묻냐?" Why?라는 말만 남겼다.
물음도 없고 답도 없는 혼란의 시대가 온 것이다. 
단테가 신의 노래를 그렸다.
천국을 보았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 주변을 그렸더니 지옥이었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
예언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날뛰었다.
세상과 함께 미쳐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옥을 걷고 있었던 것일까.

386과 달리 486은 놀기 바빴다.
386이 묻는다.
"철학이 죽었는데 정신없이 놀기 바쁘니 참 철이 없구나'
486이 답했다.
"아니. 우리는 죽어버린 철학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좁은 칸막이 안에 토끼처럼 앉아 고통받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실컷 놀아야 했다.
좌절하지 않고 인생을 신나게 즐기는 것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기 때문이다. 
권력이 부들부들 떨 정도의 실감나는 복수.

90년대. 시신이 되어버린 철학이 쏟아져 내렸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사르트르.
전쟁세대가 나라를 세우고 아버지가 산업화로 쌓아올린 이 땅.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인생을 즐겼다.
삶과 철학에 맘껏 취했다.
썩어 문들어지기 전에 살점으로 만들기 위해 술잔을 들기 바빴다.
'실패한 혁명을 위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여전히 잔소리가 많다.
"이 똥강아지들 어렸을때부터 말을 안듣더니 여전히 제정신을 못차리냐"
실컷 놀라고 그리 고생하신것 아닌가?
흥남부두에서 연희고지에서 공장에서 논밭에서 우리를 업고 키우신 것.
좋은 세상에서 맘껏 놀고 맘껏 공부하고 즐기라는 뜻 아니었나.
그래서 우린 당당하게 놀았다.
눈물을 부르르 흘리며 맘껏 놀았다.

90년대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포스트 모더니즘은 무슨.
미쳐날뜀 혹은 미쳤음.

가끔은 삶에 감사한다.
90년대를 제대로 걸어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없을 희망.
있지 않은 낙원.
오직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래서 우리는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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