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에게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0-11 오전 10:28:16

행님아.
난 형을 여전히 그렇게 부르고 있다.
경상도 팔룡초등학교를 다니고 돝섬에서 뛰어놀던때.
그때 형의 모습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 행님이라 부른다.
'마!'를 '아따~'라고 하는데 행님이라는 말만 유일하게 남았다.
나이 터울이 많아 형과 같이 놀았던 때가 많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를 갈때엔 이미 대학을 가셨으니까.
형은 항상 공부하느라 바빴다.
한번은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고 혼자 책상에 멍하니 앉아계셨다.
아버지 보다 더 크고 넓은 책장의 책을 다 읽을 줄 몰랐다.
로드쇼 잡지를 사기 위해 용돈을 다 쏟아부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형이 남겨놓은 유산에 나는 흠뻑 젖을 수 있었다.
난 정말 좋은 형을 두었다. 감사하다.

대학을 가겠다고 할때 형이 울었다.
서울로 보내달라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었다.
장남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호통을 쳤는데 거부했다.
잘했다.

그리고 사립대 등록금을 통째로 데모하는데 쓸지 몰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아버지는 그래도 바득바득 돈을 계속 모으셨다.
경찰에 쫓겨다니며 집에 못올때도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똑똑한 아이겠거니 믿으셨다.
그렇게 나는 행님을 보면서 자랐다.

언젠가 서울 대학생들을 잔뜩 데리고 왔었다.
남들은 대학원까지 마칠 시간에 군대를 가겠다고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떠난 뒤 행님의 일기장을 보았다.
행님이 대학을 들어갈때 왜 선배들이 서로 싸웠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는 20살의 기록이었다.
이제는 낡아 없어진 NL과 PD논쟁에서 범민족대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형의 모습을 보고 놀랬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솔직한 글들이 나를 울렸다.
행님은 그렇게 항상 글을 쓰고 있었다. 지금도 쓰고 있다.

내가 학생때 서울에 가끔 올라왔다.
형의 책꽂이를 자주 보았다.
담뱃재가 가득한 그곳에는 버지니아 울프와 에쿠스가 있었다. 
언제적 부터인지 몰라도 하나씩 슬쩍하던 책들이 여지껏 내 책장에 꽂혀있다.
기자를 하길래 나도 따라하고 싶었다.
솔직히 편해보였다. 
노력하지 않고도 있어보이는 삶이었다.
세상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후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깨가 축늘어진 중년이 된 행님아.
무한도전에도 나오고 예능프로에서도 인문학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삶은 그렇게 누구나 무겁게 어깨를 누르는 것 같다.
가끔은 앞으로만 걷다가 낮은 문턱에 걸려넘어지는 것 같아 슬프다.

그래도 형은 꿋꿋하게 걸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자꾸 희망을 쏘아올리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형이 있기 때문이다.
20살의 형의 흔적. 형이 남기고 간 일기장을 보았을때 '서울 대학생들은 참 괴상하다'라고 생각했었다.
다 사라지려고 하는 지금. 
그 글귀들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행님아. 어쩌면 우리는 노래하는 늙은 새가 되는 것이 아닐까 겁난다.
세상은 어둡고 비가 내린다. 
낡은 깃발은 축 늘어졌다.
행님아. 난 가끔 도망치고 싶다.
그러려고 공부를 하고 글쓰기를 했다.
그런데 도망치지 못할까봐 두렵다.
도망쳐도 불안하고 도망치지 못해도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다.

난 형한테 질문을 한 적이 없다.
'니가 알아서 하는 것이 답이야'
뻔한 답이기 때문이다. 
난 결정을 할 줄 모른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형만 따라왔으니까.
도망을 치기 위해서 글쓰기를 배웠는데 도망치지 못할까봐 겁난다.
형이 항상 핀잔하듯.
나는 왜 이렇게 매일같이 바보같은 선택만 하는 걸까.

형의 일기장에 갇힌 느낌이다.
더 자라지 않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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