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우리는 ‘소비 세포’가 분열하는 ‘나나랜드’에 살고 있다


영화 ‘라라랜드’처럼 자신이 중요해지는 세상…‘사회 규범·관습 거부’ 내년 주요 소비 트렌드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1-01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최근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의 영국판은 표지에 대대적인 ‘파격’을 가하고 있다. 9등신 바비인형의 외모를 갖춘 백인 여성은 더 이상 앞면을 장식하지 않는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 넉넉한 체형의 여성이 ‘뉴 프런티어(New Frontiers, 새로운 개척자들)’란 이름으로 소개된다. 
 
사회적인 관념이 절대적 ‘미’를 재단하던 시대의 종말이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몇 해전부터 ‘자기 몸 긍정주의(몸무게나 체형에 관계없이 자신의 몸 자체를 사랑하는 주의)’ 열풍이 불고 있고, 패션계에서는 투박하고 거친 ‘어글리(Ugly)’한 것들을 오히려 매력적인 것이라 평가한다.
 
국내 TV 뉴스에서는 안경을 쓴 여성 앵커들이 기존 관행이 옭아매던 엄격한 규정에 반기를 든다.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묵묵히 따르기만 하던 이들이 이제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인데, 왜 타인의 시선에 맞춰 노력해야 하는 건데?”
 
해마다 소비 트렌드를 키워드로 정리해 발표하는 책 ‘트랜드코리아 2019’는 이런 오늘날의 경향을 ‘나나랜드’로 압축한다. 영화 ‘라라랜드’가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들의 꿈의 무대였듯, 책은 자신이 주인공인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나나랜드로 정의한다.
 
이 세계에서 사는 ‘나나랜더’들은 남의 시선이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세운 기준을 중시하고 그만큼 타인의 기준도 수용하고 인정한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이 세계의 풍토 안에서는 나를 위해 가치 있는 제품에 아낌없이 투자(‘포미족’)하거나 성 역할의 금기를 깨는 소비(‘그루밍족’)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세포’처럼 분열한 소비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대, 책이 짚고 있는 내년도 거대한 트렌드 줄기다.
 
할리우드에 입성하길 원하는 배우지망생들처럼 오늘날 우리나라는 자신이 주인공인 세상에서 살고 싶어한다. 개개인의 현란한 퍼포먼스가 빛나는 영화 '라라랜드'의 첫 장면. 사진/뉴시스·판씨네마
 
원자화, 세분화된 소비 욕망이 출현하는 시대에는 ‘콘셉트’가 선호된다. 최대한 보편적인 제품을 많이 만들어 팔던 시대에서의 탈피다. 대충이라도 콘셉트만 확실하다면 강력한 로열티의 고객이 몰려드는 세상이 됐다. ‘대충 콘셉트’로 분기 매출액이 40% 가까이 뛴 LG 생활건강의 ‘피지’ 세제 광고, 스타캐스팅 없이도 엉성한 촬영화면으로 ‘공포 콘셉트’를 살려 성공한 영화 곤지암 등을 저자들은 예로 든다.
 
소비 가치의 다양성은 유통도 세포 단위로 분화시킨다. 수많은 1인 사업자들이 소셜미디어(SNS)를 기반으로 상품을 팔고, 1인 크리에이터들은 자기만의 콘텐츠를 모바일 라이브로 방송한다. 불법 거래와 유해 콘텐츠 등 적지 않은 문제는 있으나 적은 투자비용, 주문자 맞춤 제작에 따른 낮은 재고 위험 등은 전통 유통시장 대비 강점이다.
 
저자들은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대표작 ‘제3의 물결’에서 생산과 소비를 겸하는 ‘프로슈머’의 등장을 예견했다”며 “이 프로슈머의 개념이 40년 가까운 시간의 강을 건너 새롭게 구성된 것이 오늘날 ‘셀슈머’다. 이 셀슈머는 소비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SNS나 영상 기반 플랫폼에서 직접 판매하는 이들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최근에는 대기업도 관련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특설매장에서 고객이 인플루언서한테 상품 설명 및 착장을 도움받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롯데백화점
 
SNS로 자연스럽게 일상 속 패션 스타일과 코디 방법을 공유하며 제품을 판매하는 패션인플루어나 뷰티 제품의 리뷰영상을 올려 광고 수입을 올리는 뷰티 유튜버 등 다양한 루트의 수익 창출 방식들이 이에 속한다.
 
과거 유행하던 제품이나 디자인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뉴트로’, 온라인 상업공간이 확대되며 공간을 다양한 콘셉트로 활용한다는 의미의 ‘카멜레존’, 기상이변이 일상화되면서 환경을 필수로 생각한다는 뜻의 ‘필환경’ 등 트렌드 신조어들 역시 저자들은 나나랜드의 범주에서 분석하고 전망한다.
 
올해 책을 대표하는 표제어는 ‘피기 드림(PIGGY DREAM)’이다. ‘황금돼지’라 표현되는 내년 기해년을 맞아 행운과 재복이 돼지꿈처럼 들어오길 바란다는 의미가 담겼다.
 
대표 저자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잿빛 짙어가는 우리 소비시장에 활력을 채색하고 싶다는 기원을 담아 복숭아 빛 살구색 ‘피치 핑크’를 내년의 컬러로 선정했다”며 “콘셉트, 카멜레존, 뉴트로 트렌드는 정체된 시장을 헤쳐 나갈 2019년 신무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트렌드코리아 2019. 사진/미래의창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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