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가부도의 날’ 유아인 “돈? 내 관심사는 아니에요”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2-04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우 유아인은 이제 그만 욕을 먹고 싶다며 웃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에 대한 일부 대중들의 날 선 비난은 지금도 또렷하다. 워낙 자신의 생각을 거침 없이 말해 온 유아인이었다. 배우이지만 입으로 더 유명했다. 그럼에도 그에겐 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충무로 또래 배우 중 그와 견줄 만한 연기자가 대체 누가 있을까. 이미 숱한 감독들과 또 거장의 선택을 받아온 유아인이다. 배우 송강호는 난 그 나이에 절대 그렇게 연기를 하지 못했었다며 유아인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거장이창동 감독이 버닝에 그를 첫 번째로 선택한 이유도 그랬다. 전 세계가 그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한 동안 대중들의 시선에서 그는 사라졌다. 그렇게 돌아온 영화가 국가부도의 날이다. 극중 위기에 투자를 결정한 금융맨 윤정학이다. 뜯어보면 유아인과 꽤 닮아 있었다. 아니 유아인은 항상 자신과 닮아 있는 배역에 자신을 투영시켜 왔다.
 
유아인.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지난 달 말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버닝개봉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작품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으려 했던 그다. 물론 국내에서 버닝의 흥행은 아쉬웠다. 하지만 전 세계가 버닝에 열광했다. 그 중심에 유아인이 있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버닝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을 언급했다. 문제는 그 이후 후속작이 국가부도의 날이다. 이 영화의 가치가 떨어진 단 전제가 아니다. 유아인의 색깔과 이 영화의 톤 앤 매너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하하하. 아마도 이 영화에서 저의 비중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글쎄요. 배우란 일 자체가 주목을 받는 직업이니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그게 목적이라고 보긴 힘들잖아요. 제가 생각한 배우로서의 목적이나 목표는 좋은 작품에서 일부분이 되는 것이에요. ‘베테랑조태오역도 그랬고, ‘우아한 거짓말에선 카메오 출연이었잖아요. ‘국가부도의 날에선 가치관이 흔들리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위기는 두렵고 싫은 데 그걸 기회로 삼는 모습이 관객들의 공감대를 끌어 낼 것 같았죠.”
 
익히 알려졌고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옮겼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40대 이상 중 장년에겐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의 시간이 그 시절이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당시를 기억 못하고, 또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한 세대는 유아인이 유일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당시의 고통과는 거리가 먼 배우란 직업 때문에 시절의 아픔이 쉽게 다가오진 못했을 듯 보인다.
 
유아인.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전 그때 초등학생이었어요. 하하하. 뉴스 화면에서 나오던 당시에는 전혀 의미를 알지 못하던 그림 등이 떠오르죠. 이번 영화를 하면서 뭐랄까요. 좀 더 깨어 있는 눈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단 점을 배운 것 같아요. 물론 언제나 그러려고 했고, 또 노력도 했고.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게 또 쉽지도 않잖아요. 이 영화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되새겨 본 경험이 소중해요.”
 
그는 극중 위기를 기회로 감지한 금융맨 윤정학을 연기했다. 보기에 따라선 완벽한 속물이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 위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꽤 영민하고 영특한 인물이다. 모두의 고통을 막기 위해 노력한 한시현’(김혜수)과 달리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그 틈을 파고 든다. 물질 만능주의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중간 그런 신념 같은 지점을 뒤흔드는 장면도 등장한다. 기묘한 지점이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영화 속에서 정학이 어린 물주(류덕환)를 때리는 장면인데. 정학의 실제 본성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라고 봐요. 난 행복하지만 세상은 고통스럽지 않나. 이게 실제의 저를 움직이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내 생각과 신념이 영화 속 캐릭터와 맞닿아 있는 거의 유일한 지점 같아요. 돈도 많이 벌고 성공도 하고. 좋죠. 그런데 어느 순간 공허한 느낌. 전 많이 그런 지점을 느껴요.”
 
유아인.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경제, 특히 금융 분야에 대한 얘기다. 유아인은 이 흐름을 꿰뚫고 있는 금융맨이다. 영화 속에서 그가 다니던 회사는 실제로 IMF 당시 부도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그가 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투자자들을 모집한 뒤 국가보도를 예견하며 브리핑을 하는 장면은 꽤 그럴 듯 해 보인다. 아니 실제로 윤정학 같은 금융맨이 투자를 권유하면 그 위기에 투자를 결정할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하하. 참고로 전 금융과는 완전 담을 쌓고 사는 중이에요. 전혀 몰라요. 진짜 한 글자도 몰라요. 저 스스로가 돈에 그렇게 얽매이게 사는 게 맞지 않다고 봐요. 주변에서 투자를 권유하는 분들도 있어요. 몇 년 전에 아는 친구가 비트코인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지금 좀 후회도 되요. 하하하. 농담이고요. 배우 일을 하면서 정말 돈이 많은 분들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죠. 근데 다들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앞으로도 어떤 돈을 벌 기회가 와도 투자나 그런 건 별로 생각 없어요.”
 
영화 속 윤정학은 일갈한다. ‘난 이 위기에 투자를 하겠다라고. 사실 이 대사를 곱씹어 보면 유아인의 그동안 행보와도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다. 유아인 역시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또 어느 지점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의미가 자신의 내면 속 무언가를 움직인 것 같단다.
 
유아인.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질은 저와 같아요. 정학이 조직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것도 비슷한 것 같네요. 주변에선 그런 반응도 보여요. 언제나 이방인 같은 느낌의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는. 여러 인터뷰에서도 받은 질문이고. 제가 게으른가 봐요. 아니 게을러요. 온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 게 배우라면 전 아닌 것 같고. 저로선 꽤 얄팍한 선택이라고 봐야 할까요. 하하하.”
 
마지막 질문으로 꼭 하고 싶던 궁금증이었다. ‘버닝을 촬영하면서 그는 배우로서 기술적인 스킬을 내려 놓는 작업을 경험했다. 이창동 감독 역시 버닝을 만드는 목적 중 하나가 그러했었다. 연출자로서도 배우로서도 버닝은 그런 지점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작품이 국가부도의 날이다. ‘버닝이전의 배우 유아인을 다시 끄집어 내야 했다. 분명히 유아인으로서도 이건 쉽지 않은 지점이었을 것이다.
 
유아인.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정말 힘들었어요. 아마도 제일 힘든 게 그거였어요. ‘버닝에선 배우로서 연기적으로서 올 누드가 되는 경험을 했었죠. 실제로 올누드로 나오기도 했고요. 하하하. 근데 반대로 국가부도의 날에선 그 벗어 던진 옷을 다시 꾸역꾸역 입어야 하잖아요. 정말 적응 안됐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굉장히 혼란이 왔었죠. 사실 그렇게 보면 전 아직도 멀었나 봐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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