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세월이 경배한 기타 속주…‘메탈 신’은 건재하다


주다스 프리스트 네 번째 내한 공연…글렌 팁톤 등장에 1700여 메탈 팬 감격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2-03 오후 4:04:3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1일 오후 7시25분 무렵 서울시 용산구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 90여분간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던 금속성 메탈 사운드가 잠시 숨을 고르던 찰나였다. 암전된 무대 위로 실오라기 같은 한 줌의 조명빛이 새어 들더니 은색 장발의 한 사내가 비춰졌다. 
 
플라잉 브이 기타를 둘러메고 질겅, 질겅 껌을 씹으며 천천히 등장한 글렌 팁톤(71). 붉은 삼지창 로고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옅은 미소 후 자신들을 상징하는 곡 ‘메탈 갓(Metal God)’을 기타로 퍼붓기 시작했다. 44년간 세계 메탈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겨 온 ‘신들’, 주다스 프리스트가 재림하던 순간이었다.
 
1969년 영국 버밍엄에서 결성된 밴드는 1974년 1집 ‘로카 롤라(Rocka Rolla)’로 데뷔했다. 이후 헤비메탈의 교과서로 꼽히는 ‘브레이킹 더 로우(Breaking the law)’, ‘리빙 애프터 미드나잇(Living After Midnight)’ 등이 수록된 앨범 '브리티쉬 스틸(British Steel)'과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앨범 '스크리밍 포 벤전스(Screaming for Vengeance)' 등으로 메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0년대 보컬 롭 핼포드(67)의 일시적 탈퇴로 90년대 부침을 겪기도 했으나 2003년 재결합한 밴드는 2010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는 등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겨왔다. 
 
지난 2012년 내한 당시의 주다스 프리스트. 사진/뉴시스
 
한국 공연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2015년 17집 ‘리디머 오브 소울스(Redeemer Of Souls)’로 마지막 내한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기우였다. 3년 만에 18집 ‘파이어파워(Firepower)’가 나왔고 멤버 전원이 한국을 찾았다. 특히 팁톤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 중 하나인 파킨슨 병을 앓고 있음에도 ‘가족’ 같은 멤버들을 위해 기타를 들었다.
 
이날 팁톤을 제외한 멤버들(롭 헬포드<보컬>, 이안 힐<베이스>, 스캇 트레비스<드럼>, 리치 폴크너<기타>, 앤디 스냅<기타>)은 저녁 6시 무대에 올랐다. 무대 뒷편에서 기타를 메고 문워킹을 하며 장난을 치던 멤버들이었지만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맹수로 돌변했다. 
 
폴크너와 스냅의 육중한 기타 사운드와 트레비스의 파괴적인 드러밍, 그 뒤를 받쳐주는 힐의 베이스와 야수 같이 포효하는 핼포드의 스크리밍. 그들이 뿜어내는 메탈 세계는 화염 속 삼지창 스크린 영상과 맞물려 마치 지옥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보컬 롭 헬포드.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18집 타이틀 곡 ‘파이어파워(FIREPOWER)’로 포문을 연 밴드는 신곡과 대표곡들을 병치시키며 그들이 걸어온 메탈 여정을 한 눈에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러닝 와일드(Running Wild)', '그라인더(Grinder)'까지 세 곡을 쉼 없이 내달리고 나서야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프리스트 이즈 백. 우리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아 유 레디?”
 
가죽 의상과 금속 장식, 모터사이클 룩. 44년째 이들이 정립시켜 온 ‘메탈 패션’은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청춘이었다. '라이징 프롬 루인스(Rising From Ruins)' 때는 영화 스타워즈의 소품인 광선검이, ‘헬 벤 투 포 더 레더(hell bent to for leather)’ 때는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가 무대 위에 등장하기도 했다.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보컬 롭 헬포드.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하늘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폴크너의 퍼포먼스와 랩 수준에 가까운 헬포드의 언어 폭격, 힐의 휘날리는 머리카락. 그들의 음악을 상징하는 표식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무렵, 반응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무대 오른 편에 조그만 서클을 형성시키고 노는가 하면, 슬램(몸을 강렬하게 부딪히는 록 공연 중의행동)이나 서핑(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파도를 타듯 몸을 이동하는 행동)도 마다 않았다. 
 
1일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장.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프리슷! 프리슷”이라 열광하는 관객들을 향해 헬포드는 “우리는 여전히 파워와 에너지가 있고, 우리 만의 패션도 있다”며 “열광적인 반응 고맙다. 바로 이 곳이 헤비메탈의 커뮤니티 같다”고 화답했다. 초겨울 공연장 안이 마치 뜨거운 여름날 페스티벌 현장을 방불케 했다. 
 
'터보 러버(Turbo Lover)', '더 그린 매너리시(The Green Mananlishi)', '나이트 컴즈 다운(Night Comes Down)', '프리휠 버닝(Freewheel Burning)', '유브 갓 어나더 싱 커밍(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페인 킬러(Pain Killer)' 등 16곡이 90분 내에 쏜살같이 흘러갔다.
 
앙코르 때 스닙 대신 팁톤이 등장하자 홀의 열기는 비등점을 넘어 팔팔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데도 무대에 선 거장은 한결 여유있고 묵직했다. 대표곡 ‘브레이킹 더 로우(Breaking the law)’ 무대 때는 젊은 후배 기타리스트 폴크너(38)와 스닙(49)이 받쳐주는 가운데 함께 몸을 지그재그로 흔드는 퍼포먼스까지 완벽히 재현해내기도 했다.
 
'브레이킹 더 로우' 때 기타 퍼포먼스에 참여한 팁톤과 폴크너, 헬포드.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세월마저 ‘경배’한 팁톤의 기타 속주,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메탈 신’ 주다스 프리스트. 그들의 소리는 나이가 영원히 들지 않는 영생의 공간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을 본 1700여 메탈 팬들은 검지와 새끼 손가락을 펴며 일제히 경의를 표했고, 그런 팬들에게 팁톤은 모이를 주듯 피크를 던졌다. 가슴을 두 번 치고 검지로 손가락을 가르키는 제스쳐도 잊지 않았다.
 
글랩 팁톤.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멤버들이 내려갈 무렵, 공연장 엔딩송으로 퀸(Queen)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 흘러 나왔다.
 
여운을 가득 품은 이들의 앵콜 요청은 삽시간에 프레디의 목소리를 따라잡는 떼창으로 뒤바뀌었다. 서서히 목소리가 잦아들 무렵 반가운 스크린 문구가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돌아올 것이다(The Priest Will be back)’
 
‘메탈 신’은 건재하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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