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소현 "커튼콜에서도 내 감정은 가짜가 아니다"


뮤지컬 '엘리자벳' 주인공 열연…2013년 이후 5년 만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2-04 오전 9:27:48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엘리자벳이라는 작품은 저에게 큰 터닝포인트였어요. 이 작품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게 많았던 만큼 아쉬움도 많았죠. 꼭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더 성숙해진 이후 엘리자벳을 다시 만나게 되니 느낌이 정말 달라요."
 
사진/EMK뮤지컬컴퍼니
 
김소현이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돌아왔다.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마지막 황후의 이야기를 담은 극으로, 역사적 배경에 가상 인물인 '토드(죽음)'를 등장시켜 판타지적인 요소를 결합한 점이 특징이다. 2012년 초연 당시 10주 연속 티켓 예매율 1위를 달성하고, 120회 동안 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대작이기도 하다. 
 
2013년 시즌 이후 다시 한 번 엘리자벳 타이틀롤을 맡게 된 김소현은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쉽다"고 말할 정도로 역할에 푹 빠진 상태다. 처음 엘리자벳을 연기한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체감으로는 수십년이 지난 것처럼 배역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신분과 국적을 떠나서 엘리자벳이라는 한 여자의 일생은 여자로서 공감이 돼요. 그래서 정말 깊이있게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여자로서, 엄마로서, 배우로서 일 년 일 년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5년 전 돌이었던 아이를 키웠던 것에 비하면, 6년 키워본 지금은 상상력의 폭이 훨씬 넓어졌어요. 보시는 관객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감정의 폭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배우 인생에서 의미 있었던 작품의 타이틀롤을 다시 맡게 된 만큼 부담감도 컸다. "제가 오프닝(첫 공연)을 하게 돼서 많이 부담스러웠거든요. 항상 제가 부담을 많이 느껴서 가진 것의 50%도 못 보여드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서 마인드컨트롤을 많이 했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서 제대로 못 보여드리면 너무 슬픈 일이잖아요. (남편인) 손준호씨가 '150%를 하려 하지 말고 80%만 하려고 하라'는 조언을 해줬는데, 그 말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사진/쇼온컴퍼니
 
김소현 스스로 "배우를 하기에는 너무 유리멘탈"이라고 칭할 정도로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잘 아는 그녀지만, 그 두려움은 곧 열정과 행동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배역을 맡을 때마다 특유의 집념으로 파고드는 김소현의 열정은 인터뷰 자리에 들고 온 두꺼운 노트 한 권으로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런 노트는 대학교 때부터 몇십 권이 있어요. 작품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그때 적고, 새로운 시도도 해봐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엘리자벳이 살았던 오스트리아 빈에 직접 가보기도 했어요. 엘리자벳은 그렇게 멋있는 궁에 살면서 왜 그리 답답해하고, 벗어나고 싶어했을까 싶었는데, (직접 가보니) 그곳의 공기나 밟았던 땅, 공간이 주는 느낌이 너무 숨막히더라구요. 예전과 다른 느낌으로 이해가 됐어요." 
 
마리 앙투와네트, 명성황후 등 그동안 김소현이 맡았던 수많은 왕비 역할과 비교하면, 엘리자벳이라는 캐릭터는 어떤 점이 다를까? 그녀는 엘리자벳의 특징을 "자기 내면과의 싸움"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명성황후와 마리 앙투와네트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있었어요. 궁으로 쳐들어 오거나, 감옥에 갇히는 등 액션을 많이 줬죠. 반면 엘리자벳은 오로지 자신의 아픈 내면을 관객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역할이에요. 자칫 잘못하면 이 캐릭터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죠. 정말 역에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로 관객이 박수쳐줄 수 없는 어려운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10대부터 60대까지 한 여인의 일생을 3시간이 안되는 러닝타임 안에서 표현해야 하는 만큼  배우의 연기폭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엘리자벳의 10대 연기를 하기가 너무 어렵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오히려 10대부터 30대까지는 다 제가 겪어 본 나이잖아요.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의 나이는 상상을 해야 하잖아요. 50~60대 여자라고 생각하면 할머니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엘리자벳은 자기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더 유지하려는 강박관념이 있는 여자라 더 다른 것 같아요."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남편 손준호와 동반 캐스팅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다. 손준호는 이번 작품에서 엘리자벳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 역할을 맡았다. 명성황후에 이어 두번째로 부부가 같은 작품에 캐스팅된 셈이다. "손준호씨와 결혼하면서 상대역은 피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살인자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역할은 안된다며 많이 피했는데, 관객분들이 좋아해주실 줄 알았다면 진작 할 걸 싶었어요. 이렇게 알콩달콩하게 봐주실 줄 몰랐거든요." 물론 단점 아닌 단점도 있다. "집에 가서도 작품 연습을 하고, 공연 이야기를 한다는 것?(웃음) 공연 끝나고 메이크업도 못 지운 상태에서 밥먹는데, 손준호씨가 '아까 그 장면 있잖아'하며 공연 이야기를 꺼내면 '이제 좀 그만 이야기하라'고 할 정도에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배역에 대해서는 "그동안 너무 좋은 역할을 많이 해서, '뭘 해보고싶다'고 하면 후배들에게 미안한 것 같다"면서도, '젠더프리' 캐스팅이 가능하다면 지킬앤하이드의 지킬역을 해보고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어렸을 때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던 게 한이었을 정도로 지킬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배우로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죠. 아 경쟁작이라 말하면 안되는데(웃음). 그런데 사실이에요. 언젠가 한번 주어진다면 멋있게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요즘 들더라고요. 워낙 뮤지컬 매니아분들이 많잖아요? 꼭 제가 아니더라도 여배우들이 모여서 그분들을 위해 그런 공연을 한다면 너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EMK뮤지컬컴퍼니
 
김소현의 지향점은 "지금의 떨림을 계속 갖고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떨림이 없어지면 은퇴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진심을 쏟아내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연을 통해 두시간 반을 쏟아내면 커튼콜에서 관객들이 저에게 답을 주시잖아요. 그때의 벅참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지만 매번 가짜의 감정은 없다고 생각해요. 커튼콜에서도 솔직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엘리자벳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어떤 엘리자벳을 보더라도 선입견 없이 100% 흡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엘리자벳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높은 것 같아요. 워낙 관객분들이 평론가보다 엘리자벳을 더 많이 보셨고, 수준이 높아요. 그래고 관객들이 생각하는 엘리자벳이 다 있는데요. 어떤 배우로 엘리자벳을 시작하셨든, 세명의 엘리자벳이 다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며 관람한다면 더 재밌게 공연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시즌에는 김소현을 비롯해 옥주현 신영숙이 함께 엘리자벳 역할로 트리플 캐스팅됐다. 공연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내년 2월10일까지 열린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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