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하는 글쓰기 - '영화비평②'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2-06 오후 4:21:35

지난번에는 '스모크' 영화로 글을 써봤어요.
이번에는 한국영화 '버닝'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봐요.
 
버닝은 배우 유아인씨가 출연한 영화입니다.
일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만들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죠.
 
영화를 보니 무섭습니다.
살인에 관한 내용이에요.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욕망 그리고 분출.
배설과 변태.
 
그러면 우리 함께 버닝 영화로 '나'와 '세계'에 관한 글을 써봐요.
 
 
소설은 작성과 퇴고가 같이 일어난다.
소설은 여행이나 모험과 같다.
여행에도 변수가 생기듯.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은 완성후 퇴고가 없다.
쓰기와 퇴고의 병행.
쓰다가 앞과 뒷이야기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된다.
아이디어는 백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쓴 내용안에 힌트가 있다.

소설가가 되려는 '종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혜미는 종수에게 다른 모습의 욕망을 보여준다.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숨길 수 없다.
다른 세계에 대한 궁금증.
타인에 대한 욕망.
그것은 소유욕으로 분출된다.
 

운이 좋으면 가끔 볼 수 있는 혜미방의 '햇빛'.
어스름하게 잠깐 들어오는 빛.
새로운 욕망을 접한 종수는 혜미의 욕망을 소유한다.
그것은 누구도 숨길 수 없는 절대본능.
욕망이라는 어린 신부의 면사포를 들춘다.
메두사라는 욕정이 얼굴을 내민다.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욕정.
모든 욕망은 소유하고자 하는 본능이다.

사람. 생각. 사상. 사랑. 性. 물질.
공유라고 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진정 나눠가질 용기가 있을까.
이타심은 가면이다.
관용과 환대안에는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은 자신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마음의 밭에는 열등감과 우월감이 자란다.
우월감은 환대로 표현된다.
열등감은 시기와 질투로 나타난다.
두개의 감정은 사람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만선으로 고기를 잡아온 어부.
어느덧 커다란 수조안에는 일부 물고기들이 죽어있다. 
큰 바다가 아닌 좁은 수조안에서 저들끼리 관계를 재설정한 것이다. 

욕망을 사이에 둔 사람들.
우월과 열등 사이에서 관계를 재설정한다.
숲에서 벌어지는 짐승들끼리의 사냥보다 지구위 인간사이의 투쟁이 더 잔인한 법이다. 
투명하고 깨끗한 어항은 그래서 평화롭다.
살아남은 승자들의 어항.
너무 깨끗해서 참을 수가 없다.

 
종수의 우상인 혜미.
자유를 보여주고 욕망을 향해 내달리게 해준 혜미.
그녀를 창녀라고 말하는 종수.
그럼에도 그녀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그.
그것은 욕망을 먹어치운 후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변태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관계의 먹이사슬에서 제일 아래 있던 종수.
그는 혜미의 방에서 '빛'을 처음보고 불나방처럼 욕망을 먹어치운다.
욕망의 분출. 
욕망이 욕정으로 터져나오는 변태 과정.
누가 볼까 두려운 것은 입을 크게 벌려 그것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혜미가 없을 때 종수는 혜미의 방에서 상실감을 채운다.
스쳐 지나가는 것을 잡아두려는 것.
우리는 마술처럼 상대를 속인다.
욕망을 두고 갑과 을을 설정하는 놀이다. 
진실과 환영을 번갈아 가며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재물로 만들어 먹어버린다. 

 
세상은 수수께끼 같다. 
욕망끼리 부딪히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과정이다 .
영화에서는 "여자를 애지중지한다"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그것은 환영이다.
약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가 진실이다.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자신을 태우는 변태과정을 겪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타인의 욕망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영화에서 혜미의 친구는 불현듯 말한다.
"그거 알아요?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

이기면 왕이요. 지면 역적이다.
욕망의 투쟁.
그 결과는 참혹하다.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다. 
진실과 환영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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