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하는 글쓰기 - '철학수필④'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8-12-07 오전 9:56:04

철학수필 네번째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얘기해봐요.
무거운 주제입니다.
 
한국은 OECD국가에 포함돼 있지만 행복보다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자살율이 1위라는 것은 사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끼고 불행에 좌절할까요.
글로 한번 생각을 써봐요.
 
 
모두 잠들지 말라

인간은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
삶을 끝내는 이유는 불행하기 때문이다.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는 너무 불행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친구에게 전화해 본다.
"야 우리 이 영화 한번 봐보자. 정말 재밌데" 
불현듯 희망을 느끼는 전화를 받았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가는 입에 재갈이 물린다.
희망이 없으면 자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어쩌면 우리는 자살을 행복이라고 선택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불행한 사회다.
 
 
명문대 학생과 연예인의 자살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살의 시작은 허영에서 시작한다. 
칭찬을 받으면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 못한다고 혼내면 그 모습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미인이라고 칭찬하면 미모는 자기 것이기 때문에 얼굴이 망가지면 삶을 끝내는 경우가 있다.
애초에 못났다고 하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꼴찌는 자살 안한다.
1등이 2등하면 모든 것이 무너진 느낌이다. 

공부, 옷. 
남들의 평가는 상대적이다. 
1등이 2등이 돼 우울한 아이.
"꼴등이 공부안해서 너가 1등일 뿐이야"라고 말하라.
"더 똑똑한 아이들이 오면 넌 꼴등이야"라고 말하라.
결국 상대적인 것이다.
예쁘거나 똑똑하면 그 모습이 '나'라는 허영심을 가진다

누구나 허영을 가지고 있다.
1등이 나의 본질은 아니다.
외모가 나의 진짜 모습은 아니다. 
책을 많이 보고 실패의 경험도 많이 해야 한다.
점수도 확 떨어져봐야 한다.
일종의 면역주사다.
자꾸 잘한다고 부추기면 허영심이 생긴다.
카이스트 친구들이 사라지는 이유다.
 
 
꼴찌를 해도 안아주는 엄마가 있었다면 청춘들이 그리 쉽게 떠났을까.
연예인도 속얘기를 들어줄 친구가 있었다면 삶을 포기했을까.
다른 사람의 평가는 덧없는 거다.
사람들은 의외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죽음에는 1인칭, 2인칭, 3인칭 죽음이 있다.
너가 죽으면 내가 힘들어진다.
일본 쓰나미로 사람들이 죽으면 안슬픈 이유다.

2인칭이 죽으면 내가 슬프다.
나의 죽음은 내가 안슬프다. 
죽은자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카이스트 학생이 어서 "내 부모가 아프다"고 생각하면 학생은 못죽는다.
그런데 카이스트 학생은 자기를 부모의 '너'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난 1등 하는 학생이구나'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이유다.
'나'가 죽는거니까 고통은 사라진다.
부모는 '너'가 아니니까 상관 안하겠지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본 쓰나미로 죽은 사람을 보고 별 감정을 못느끼듯 나의 죽음에 부모도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정이다.
결국 절망이 자기를 그 길로 밀어낸 것이다.  
"난 떠날께. 어차피 감각이 없어지니까. 아파할 '너'라는 존재는 없겠지"라고 느끼는 것.

죽은 사람이 행복할 수도 있다.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산사람은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고통은 남은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오래 살아야 한다.
가급적 늦게 죽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가 죽으면 넌 고통을 못느끼지만 난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살아남자의 슬품을 내가 감당하겠다는 것. 그게 사랑이다.
자살은 하는 사람은 '나'를 '너'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죽는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나.
우리 사회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나의 죽음'이 제일 아프다고 말한다.
성숙하면 '너'의 죽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1인칭 죽음이 고통이라는 것은 미신이다. 
사랑하는 '너'의 죽음이 정말 슬픈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세상이 힘들게 하는데 자살을 막는 사회라.
그것은 과도한 욕심이 아닐까.

사회가 처절하다.
OECD에 가입한게 무슨 의미가 있나.
병으로 인한 죽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잠자는 것.
꿈꾸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아픔은 삶 속에 있다.
공포와 두려움은 의식 있는 산사람만 느낀다.
잠들었을때는 공포를 못느낀다. 
죽음은 삶의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사후세계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죽어가는 노인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
그리고 보험을 판다.
너무 잔인하지 않나.
죽음은 여행같은 것이다. 
일장춘몽. 
잘 지내다가 잔치를 열고 홀연히 가는 것.
고통이 없다. 
죽을 것을 전전긍긍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자살은 에너지의 문제다.
오지 않는 죽음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죽음의 공포에 노심초사하면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 삶을 안돌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삶에 시선을 돌려라.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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