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이토록 유쾌한 살인…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1900년대 영국 사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유연석·이규형 열연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1-09 오전 10:24:07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국내 뮤지컬 가운데 살인자가 등장하는 작품은 차고 넘치지만, 그 살인자가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도 살인이 벌어지는 족족 순도 100%의 폭소가 터져나오도록 만드는 작품이라니, 언뜻 들어서는 미스매치가 따로 없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은 '살인'이라는 소재와 '코미디'라는 장르를 어떻게 하면 유쾌한 방식으로 버무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답안에 가깝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어느정도 엄숙주의를 품고 있었을 일부 관객들의 마음까지도 무장해제시키며 이 유쾌한 살인극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진/쇼노트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삼는 시대극이다. 평생을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온 주인공 몬티 나바로가 자신이 명문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몬티는 자신보다 후계 서열이 높은 8명을 하나씩 없애 스스로 다이스퀴스 가문 백작에 오르려 하는데, 그 연쇄살인 과정이 워낙 황당하고 익살스러워 '다음 후계자는 어떤 방법으로 죽을까' 하는 호기심까지 인다.
 
이렇듯 '젠틀맨스 가이드'는 그간 국내 뮤지컬계에서 자주 다뤘던 여타의 시대극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웃음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해서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 휘발성 작품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엄밀히 말하면 에드워드 시대 전후의 영국 계급 사회를 통렬하게 까발린 블랙코미디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웃음으로 포장한 장면 곳곳에 잘 벼린 칼날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극중 명문가로 나오는 다이스퀴스 후계자 상당수는 기득권 특유의 이기심과 허세를 한가득 품고 있다. 주인공 몬티의 최종 타깃인 애덜버트 다이스퀴스 백작부터가 그렇다. 그는 "왜 가난할까/난 모르겠다/왜 가난하고 그래"라고 노래하며 하층민의 삶을 공개적으로 멸시한다. 극중 약자에게 존경받는 자선 사업가나 성직자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레이디 하이신스 다이스퀴스는 자선 사업을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수단으로 여기는가 하면, 에제키엘 다이스퀴스 목사는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불륜을 저지르는 은행 재벌의 2세도 등장한다. 겉으로 고귀한 귀족 행세를 하고 있지만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이들 캐릭터가 계략에 빠지는 장면은 때로 통쾌감마저 안겨준다.  
 
사진/쇼노트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이 대책 없는 연쇄살인에 빠져들 수 있는 배경에는 몬티 역을 맡은 유연석과 1인 9역을 소화한 배우 이규형의 연기력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코미디가 으레 그렇듯 작품의 적재적소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었던 데는 두 주연배우의 연기 호흡이 큰 역할을 했다.
 
유연석은 복수심과 욕망에 가득 차있으면서도 일면 어설픈 구석을 가진 몬티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극중 몬티는 살인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다기보다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는 식으로 범행을 성공시키곤 하는데,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 눈 앞의 욕망에 금세 돌변하고 마는 인간의 모순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또한 이규형이 연기하는 다이스퀴스 후계자들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공연의 성패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규형은 백작과 성직자, 은행가, 대지주, 배우 등 지위와 성별이 제각각인 다이스퀴스 가문 후계자 9명의 개성을 뚜렷하게 살리는데, 그가 새로운 인물로 분장한 채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석에서는 이미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진/쇼노트
 
한 번만 들어도 귀에 맴도는 넘버들은 공연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일등 공신이다. 몬티가 삼각관계를 이루는 두 여주인공 시벨라(임소하), 피비(김아선) 사이를 오가며 함께 부르는 '결혼할 거야, 그대랑'은 이 공연의 수많은 넘버 가운데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의 화신으로 표현되는 시벨라와 고결함의 상징인 피비의 대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여인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며 노래하는 배우 유연석의 재치는 덤이다. 
 
사진/쇼노트
 
한편, '젠틀맨스 가이드'는 로이 호니먼의 소설 '이스라엘 랭크-범죄자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미국에서는 2012년 초연됐으며, 토니어워즈,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외부 비평가 협회상, 드라마 리그상 등 브로드웨이 4대 뮤지컬 어워즈에서 총 16개의 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 첫 선을 보인 한국 공연에서는 김동완, 유연석, 서경수가 몬티 나바로 역, 오만석, 한지상, 이규형이 9명의 다이스퀴스 역을 맡았다. 몬티 나바로의 여자친구 시벨라 홀워드 역에는 임소하, 몬티 나바로를 사랑하게 되는 피비 다이스퀴스 역에는 임소하가 캐스팅됐다. 
 
한국판 '젠틀맨스 가이드'는 오는 2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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