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칠리소스 없이 피자를 먹을 수 있을까?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1-11 오전 6:00:00

잠깐 유행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단어가 있다. 유전공학이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유전(油田)과 관련한 공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낯선 말이었다. 실제로는 유전(遺傳)이다. 굳이 공학을 붙인 이유는 유전자를 조작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마구 찍어내는 어떤 공장 같은 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유전공학이라는 말에 금세 매료되었다. 
 
유전공학을 설명하는 책에는 반드시 나오는 예가 있었다. 포마토(pomato)가 바로 그것. 뿌리에는 감자(포테이토)가 열리고 줄기에는 토마토가 달린 식물이다. 우리말로는 토감이라고 불렀다. 토지를 두 배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가히 기적의 식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때가 1997년이었다. 무려 22년 전이다. 지금쯤이면 그냥 감자밭이나 토마토밭은 아예 없어졌어야 한다. 그런데 이젠 책에 포마토 같은 말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실 포마토는 소위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전통적인 접붙이기를 통해서 만들어졌을 뿐이다. 토마토와 감자 모두 같은 가지과 식물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포마토는 유전공학을 선전하기 위한 직관적인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중은 유전공학에 대한 열망을 키운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유전공학에 대한 우려와 혐오를 표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겁이 났기 때문이다. 유전공학 기술은 원하는 유전자를 이동시켜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형질의 식물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GMO라고 한다. GMO는 우리 사회에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단어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농업의 역사란 유전자 조작의 역사였다. 전통적인 육종에서도 원하는 유전자형을 분리해 내든가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해서 원하는 형질을 선발했다. 오늘날의 GMO와 차이점이라고는 실험실에서 수십 년만에 이뤄진 게 아니라 밭에서 수백~수천년에 걸쳐서 만들어졌을 뿐이다. 농업의 역사란 유전자 조작의 역사고,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GMO다.
 
더 이상 유전공학이라는 말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지만 유전자 조작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다만 '조작'처럼 부정적인 느낌이 나는 단어를 쓰지 않을 뿐이다. 요즘은 유전자 편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마치 책을 편집하는 것처럼 가볍게 들린다. 포마토처럼 이상한 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키위 색깔을 바꾸고 딸기의 맛을 바꾼다는 식이다. 물론 목적은 단 하나. 경제성이다. 
 
포마토를 가능하게 했던 감자와 토마토처럼 고추도 가지과 식물이다. 1900만 년 전에 고추와 토마토는 같은 조상에서 갈라섰다. 그렇다면 고추와 토마토를 가지고도 뭔가 재밌는 '편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편집을 해서 어떤 이득이 있을까? 각각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릴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장점만 더할 수 있어도 나쁘지 않다.
 
토마토는 경작이 쉽다. 그리고 영양분이 풍성하고 상큼한 맛이 난다. 고추는 경작이 어려운 데다 매운 맛이 난다. 고추도 처음에는 토마토 맛이 났을 것이다. 돌연변이 때문에 고추에서 그 맛이 사라지고 매운 맛이 생겼다. 물론 매운 맛은 고추에게는 행운이었다. 덕분에 사람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고추를 건드리지 못한다. 매운 맛은 캡사이신 때문인데 캡사이신 수용체가 없는 새가 고추 씨앗을 멀리 퍼뜨린다. 고추 가운데서도 특히 맵고 톡 쏘는 맛이 강해서 다른 야채와는 달리 따로는 못 먹고 양념으로나 쓸 수 있는 종류도 있다. 고추마다 각기 다른 매운 맛이 나는 까닭은 캡사이신 유형이 23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유전공학이란 말이 차지했던 자리를 2000년대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유전자를 정확히 잘라서 원하는 곳에 넣어주는 신기의 기술이다. 그렇다면 고추마다 미묘하게 다른 캡사이신 유전자를 토마토에 이식하면 어떻게 될까? 과학자들은 매운 맛이 나는 다양한 토마토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토마토는 키우기가 쉽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최근 브라질 연구팀은 칠리 고추 맛이 나는 토마토를 개발했다. 
 
모름지기 피자라면 두껍고 커다란 토마토 슬라이스가 토핑으로 듬성듬성 올라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매운 칠리소스를 뿌려 가며 먹어야 제 맛이다. 칠리소스는 맛있지만 질질 흐른다는 단점이 있다. 매운 맛이 나는 토마토가 생긴다면 더 이상 칠리소스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 피자에 칠리소스를 뿌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코앞에 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만세!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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