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1년…답보하는 거래소


실명계좌 지원 은행 신한·농협·기업 불과…신규 계좌 발급 제한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1-29 오후 3:09:37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암호화폐(가상통화·암호화자산) 거래 실명제가 도입 1년을 맞았지만 시장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법적·제도적 정비나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신규 실명확인 계좌 발급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특히 시중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확인 계좌 발급을 제한하면서 법인계좌 등 우회적인 방법을 이용한 편법거래가 확산되고,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습이다.
사진/픽사베이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제공하고 있는 시중은행은 신한·농협·기업은행 등 3곳으로 확인됐다. 작년 초 국민·신한·KEB하나·농협·기업·광주은행 등 6개 은행이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이하 거래 실명제)’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실제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곳은 신한(코빗)·농협(빗썸·코인원)·기업은행(업비트) 등 3곳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월30일 금융당국이 과열되는 암호화폐 투기 열풍을 잠재우고 시장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 실명제를 개시한 직후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 금융당국에서는 실명계좌 발급과 관련해 은행의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은행권이 암호화폐 거래 관련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꺼리면서 신규 투자자 진입은 제한된 상태다.
 
자금 세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도 은행이 뒤집어 써야하는 탓에 은행들이 '눈치보기'에 급급하며 소극적인 행보를 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 역시 “암호화폐 거래소로부터 계좌발급 요청이 들어오긴 하지만, 현재로선 신규 거래소에 대한 계좌 발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결과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의 경우 신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실명계좌 발급이 여전히 가로막혀있으며, 작년 말 원화(KRW)거래를 개시하기로 했던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후오비코리아는 시중은행과의 협의에 이르지 못하고 법인 계좌 형태로 원화 마켓만 지원하기로 했다.
 
후오비코리아 관계자는 “코인 간 거래의 경우, 우선 원화 입출금이 가능한 타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한 후 이를 후오비 코리아 계정으로 송금해 거래를 하고, 다시 타 거래소로 송금해서 출금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며 “고객 편의를 증진하고 가라앉은 암호화폐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법인계좌 형태의) 거래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시중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 실명확인 계좌 발급을 재개하지 않다보니 개인 실명보다 거래소 명의로 관리되는 이른바 ‘벌집계좌’ 형태의 투자가 오히려 더 많은 형국이다 .
 
실제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을 제외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대부분은 법인계좌로 투자금을 받고 있다. 은행에 법인 계좌를 만든 후 해당 법인계좌를 통해 투자자의 자산 명세를 관리하는 형식이다. 금융당국은 원칙적으로 거래 실명제를 주문하고 있지만, 벌집계좌를 활용한 거래소에 대한 별다른 제재조치는 없다.
 
여기에 작년 10월 법원이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이즈가 농협은행을 상대로 낸 (법인계좌) 입금정지조치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거래소의 손을 들어주면서 벌집계좌를 활용한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특히 일부 거래소의 경우 고가의 수입차 등을 경품으로 내걸며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벌집계좌의 경우 투자자가 자금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장부 조작이나 해킹 등이 발생할 경우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 한 관계자는 “거래소 또한 벌집계좌를 고집하고 싶지 않지만, 은행에서 신규 계좌를 내주지 않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법인계좌나 코인 간 거래만 지원하고 있다”며 “정부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주면 적극 따를 것”이라고 항변했다.
 
블록체인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에서는 실명계좌를 사용할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법인계좌를 선택한 것인데 이는 오히려 거래소 난립과 자금세탁 부작용을 더 키울 수 있다”며 “거래소에 대한 제도적·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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