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기묘한 가족’, 전무후무한 ‘기괴함’의 변주


‘좀비+코미디+변주+비틀기’…기괴한 장르 탈피 영화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2-07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미드 워킹데드가 전 세계를 강타한지 오래다. 국내에선 영화 부산행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상업적 장르 가능성에 강한 임팩트를 줬다. 지난 해 말 영화 창궐이 개봉하면서 사극과 좀비의 결합이 이뤄졌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주류와 그 밑 하위 장르로 분류되던 두 콘셉트 결합은 신선했다. 최근 넷플릭스 킹덤이 다시 한 번 초강력 존재감을 발휘하며 좀비는 이제 완벽한 주류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좀비는 일반적으로 콘셉트라기 보단 사회상을 반영한 소재로 여겨진다. 자극적 소재로 희화시킬 수도 있지만 본능만 남은 객체로서 스토리라인에서 주변 캐릭터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가장 완벽한 요소로 여겨진다. 때문에 워킹데드와 같은 스토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결과적으론 좀비장르 개념적 요소가 아닌 인간 본연 내면적 분석과 해체를 보다 더 날 것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장치로 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를 깔고 간다면 영화 기묘한 가족은 사실 난해함을 넘어서 셀링 포인트 기준점이 모호해진다. 좀비가 등장하지만 기존 장르 변주가 이뤄졌다. 그 변주가 단순한 변주가 아니다.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지만 코미디로 보기에도 애매하다. 로맨스도 있다. 하지만 로맨스로 보기에도 모호하다. 액션까지 가미됐다. 그렇다고 액션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한국형 좀비 장르에 국내 정서를 기반으로 한 코미디가 결합됐다. 무엇보다 확실한 변주는 기존 좀비 장르에선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괴상망측한 비틀기가 담겨 있다. 이 정도면 기묘한 가족은 다층적인 요소가 차고 넘치는 전무후무한 영화가 된다. 사실 이도 저도 아닌 짬뽕 스타일이라고 하면 완벽한 선입견이다. 반박자 빠른 웃음 포인트가 산개해 있다. 반대로 반박자 느린 황당 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러닝 타임 내내 눈을 땔 수 없게 만든다. 이게 바로 기묘한 가족핵심이다. 관객을 붙잡고 끌고 가는 법을 완벽하게 알고 덤빈다. 관객 심리를 알고 관객에게 도전장을 던지니 관객으로선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다.
 
영화는 충청도 한 마을이 배경이다. 지역 특유 느릿한 템포는 좀비란 소재 자체 선입견과는 분명 역전되는 상황을 예상케 한다. 예상대로다. 좀비(정가람)가 등장한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놀라기는커녕 관심도 없다. 그저 뭔 일 있는겨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동네 개에게 쫓기는 모습에, 끔찍한 외모에, 입을 벌리고 달려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패대기질 한다. 아이러니의 유머코드가 시작된다. 이 마을 주유소에는 하와이 여행이 꿈인 만덕(박인환) 그의 아들 준걸(정재영) 남주(엄지원) 부부, 막내딸 해걸(이수경)이 산다. 남주는 결혼 10년 만에 임신을 했다. 준결은 교통사고 조작으로 수리비 바가지를 씌워 생활비를 해결하며 산다. 이 가족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이 가족과 좀비가 만난다.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을 나와 서울 대기업에 취직한 민걸(김남길)이 찾아온다.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은 채 낙향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해걸을 보고 민걸은 반갑다. 하지만 해괴한 외모의 좀비를 보고 민걸과 해걸은 냅다 도망친다. 도망치던 좀비는 준걸이 운전하던 커다란 트럭에 치여 논밭으로 날라간다. 죽은 줄 알았다. 준걸과 민걸 해걸은 놀라기는커녕 죽은겨?’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건 보통의 기준을 넘어섰다. 이 가족 진짜 이상하다. 그런데 좀비라니. 이건 아이러니가 아니라 해괴망측한 상황이다.
 
쫑비란 이름을 갖게 된 좀비. 사람 피를 빠는 게 아니라 양배추에 환장한다. 사람을 물기는 한다. 그런데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되는 게 아니다. 회춘을 한다. ‘쫑비에게 처음 물린 만덕은 검은 머리카락이 돋아나고 오줌발이 변기를 부실 정도가 된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난리다. 돈을 싸들고 온다. 쫑비에게 한 번 물리기를 소원한다. 준걸의 가족. 이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이건 기회다.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기묘한 가족은 제목 그대로 기묘하고’ ‘기괴하고’ ‘괴상하며’ ‘종잡을 수 없는어디로 튈지 모를 캐릭터들이 모인 가족이다. 이들에게 더욱 더 기묘한 놈이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순진한 건지 순박한 건지 모르겠다. 쌓이고 쌓여가는 사건은 이제 난장판이 된다. 그 난장판은 급기야 온 나라로 번진다. 처음 쫑비가 탄생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됐다.
 
영화는 이종 교배 방식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지에 대한 예측을 조금씩 벗어난다. 정통 코미디로 이끌어가다가 좀비 코드를 집어넣고, 또 좀비 코드로 가다가 슬랩스틱 방식을 취하는 격이다. 때로는 집단을 활용한 뮤지컬 영화 작법까지 끌어 온다. 기존 좀비 장르 클리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예측을 반박자 빠르게 끌고 오거나 또는 느리게 가져 온다. ‘좀비에게 물리면 변한다는 코드가 등장하지만 이걸 활용한 방식이 그렇다. 난장판 상황에서 해결하는 포지션도 마찬가지다. 결혼식 장면이나 주유소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웃기면서도 웃지를 못하게 된다. 이건 웃기지 않아서가 아니다. 웃을 타이밍을 좀처럼 쉽게 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게 단점이 아니다. 영화 전체 흐름에 관객들의 관심을 오롯이 집중시키는 힘이 된다.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 같은 스타일의 변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코미디 흐름과 작법을 비틀어 버린 코드가 다양하다. 쫑비와 해걸의 양배추밭 러브신, 충무로 코미디 변주 교본으로 꼽히던 주유소 습격사건 패러디, 월컴 투 동막골을 연상케 하는 패딩 솜털 장면 등은 기묘한 기시감을 주는 동시에 이 영화의 비틀기가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비틀기와 변주에 집중하지만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도 다분하다. ‘쫑비란 이름의 좀비가 탄생하게 된 배경,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준걸 가족의 해학적인 가족 사업, 국가적 재난에 따른 영화 전체 톤 앤 매너의 시선 등은 인간 사회 산업적 측면과 시스템 구조화에 따른 감정적 황폐화를 꼬집는 모습처럼 다가온다. 인간성 상실의 표본인 좀비를 대입시켜 이를 구체화했다.
 
좀비에게 물리는 대상의 흐름이 남성에게 집중되고 회춘이란 코드를 끌어 들인 면도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선택적 해학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기묘한 가족 스타일이 전할 수 있는 코미디 시선이라면 이 방식도 분명히 옳은 듯하다.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사실 모든 지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묘한 가족의 기묘함은 그 자체로 기묘하다. 이건 어디서도 본적이 없다. 변주와 비틀기가 관건이라면 기묘한 가족은 전례 없는 전무후무함을 만들어냈다. 반대로 그것만이 장점이라면 기묘한 가족은 그저 기묘할 뿐이다. 그런데 그 기묘함이 괴팍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최소한 한 번쯤은 체험해 봐도 괜찮을 지점을 전부다 끌어 모아놨다. 이건 그 어떤 장르적 작법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관객의 개별적 체험 관람기가 ‘기묘한 가족’ 그 자체가 될 것 같다. 개봉은 1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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