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영화, 이제는 트랜드가 아닌 ‘특별함’이 생존 코드


지난 해 하반기 한국영화 8편 흥행 실패…‘성공 코드’ 답습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2-12 오후 4:1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은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선 충무로 기존 상업 영화 제작 트랜드를 바꿔 놓을 변화를 이끌어 냈다. ‘코미디’는 의외로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선 비주류에 속해 있었다. 타깃형 장르로 분류돼 세대별 공감 포인트가 분명했다. 두 번째는 대규모 흥행을 기대하기 힘든 장르란 점이다. 물론 ‘7번 방의 선물’ ‘과속 스캔들’ 같은 성공한 코미디 영화도 존재한다. 하지만 충무로 관계자들에겐 ‘하늘의 별따기’로 여겨지고 있다. 액션과 사극 등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범죄물에 국한된 국내 영화 소비의 트랜드를 짚어 볼 때 고개가 끄덕여 지는 점이다. 세 번째는 ‘스타 의존도’다. ‘극한직업’에도 ‘광해’ ‘7번 방의 선물’ ‘명량’ 등 무려 세 번 연속 1000만 영화에 출연한 류승룡이 나온다. 하지만 류승룡은 이후 연이어 출연작의 흥행 실패로 ‘충무로 부도수표’로 전락한 바 있다. 연출을 맡은 이병헌 감독도 호불호가 강한 스타일의 필모그래피를 선보여 왔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뛰어 넘은 ‘극한직업’은 이제 충무로 상업 영화가 어떤 기획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 기획의 중요성
 
영화 관계자들은 지난 해 추석 시즌과 겨울 시즌 극장가의 한국영화 실패 원인은 너나 할 것 없이 ‘기획의 실패’로 짚어내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장르 작법을 대입한 스토리에 관객들의 공감 지수는 떨어졌다. 장르 자체의 색깔을 내세운 관람 포인트도 담겨 있지 못했다. 이런 점은 이른바 ‘4년 주기설’이라고 불리는 한국영화 침체기와 맞닿아 있기도 했다.
 
12일 오후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한 영화 관계자는 “지난 추석 시즌부터 겨울까지 한국영화의실패는 투자 시스템에 대한 문제였다”면서 “투자자들은 안정된 혹은 검증된 시스템을 원한다. 다른 특별한 시도나 새로움에는 사실 반감이 크다”고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이 관계자의 말처럼 지난해 한국영화의 부진은 안정된 혹은 검증된 기획 영화의 난립이었다. 사실 기획이란 단어 자체도 무색하다. 완벽한 백지에서 새로움을 그려야 하는 기획의 정의가 지난 해 개봉 후 실패한 영화에는 대입이 불가능한 점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 성공했고 또 성공했던 기본 포맷에 검증된 배우와 감독이 비슷한 시나리오로 스타일만 바꿔서 등장했다”면서 “일부 영화가 새로움을 추구하고 나섰지만 역시 완벽한 준비가 아닌 새로움만 부각시키려다 쓰디쓴 실패만 맛보게 됐었다”고 전했다.
 
‘명당’ 협상’ ‘안시성’ ‘원더풀 고스트’ 그리고 ‘마약왕’ ‘PMC: 더 벙커’ ‘스윙키즈’ ‘창궐’ 등은 이런 패착을 고스란히 안고 출발했던 영화들이었다.
 
♦ 무분별한 몸집 키우기
 
올 겨울 개봉한 한국영화 빅4(마약왕, PMC: 더 벙커, 스윙키즈, 창궐) 모두 순제작비만 100억대가 훌쩍 넘는 대작들이었다. 이들 4편 모두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고 극장가에서 사라졌다. 관객들은 대작 영화에서 기대하는 지점이 명확하다.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그에 걸 맞는 스토리의 흐름이었다.
 
조만간 촬영에 들어가는 한 상업 영화 제작사 대표는 지난 해 이들 영화 4편의 실패에 대해 ‘몸집만 키운 빈 껍데기’였다고 혹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대표는 “‘마약왕’을 제외하면 3편의 영화들은 기획에서도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면서도 “완성된 결과물은 동의하기도 납득하기도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스토리가 첫 번째인 상업 영화에서 이들 3편은 볼거리에만 치중했다.
 
그는 “몸집을 키운단 코드 자체가 볼거리에 치중하겠단 다른 말이다”면서 “이런 점은 필연적으로 스토리의 빈약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문제점을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 스타성 앞세운 마케팅 실패
 
앞선 두 가지의 문제는 감독 혹은 배우의 스타성에 기댄 기획에서 출발한다. 지난 해 하반기 극장가에서 연이어 실패한 8편의 한국영화 모두 스타성을 담보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완벽한 실패를 맛봤다.
 
한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 산업 자체가 리스크 산업이기에 확실한 보증 수표를 안고 가야 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단 점은 어쩔 수 없다”고 호소했다. 지난 해 하반기 개봉한 8편의 한국 영화 모두 주연 배우 혹은 감독의 스타성에만 기댄 채 관객들에게 호소했을 뿐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본다면 ‘극한직업’의 성공은 상당히 많은 것을 깨우쳐 준다. 철저한 장르 특성 집중 그리고 장르에 걸 맞는 몸집 유지 여기에 스타성이 아닌 장르의 특성과 그 특성에 어울리는 양념을 찾아내 관객들에게 어필했다. 지난 달 23일 개봉한 ‘극한직업’은 누적 관객 수 1305만, 하루 평균 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 중이다. 좌석 점유율도 53.8%에 달한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65억 수준이다.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90억대다. 현재까지 누적 매출액만 1130억을 넘어섰다.(12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13일 개봉하는 ‘기묘한 가족’도 이런 흐름에 주목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좀비 장르를 끌어 들였다. 하지만 로맨스와 코미디 그리고 국내 지역 정서까지 믹스시켰다. 혼합 장르로 볼 수 있지만 스타일 면에서 국내 상업 영화 트랜드와는 분명히 역주행하는 면이 크다.
 
한 영화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극한직업’은 지금까지의 상업 영화 트랜드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 있던 작품이다”면서 “’기묘한 가족’도 마찬가지다. ‘극한직업’이 장르의 특성에만 집중한 영화라면 ‘기묘한 가족’은 장르의 특성만을 살려서 새로운 기획으로 이끌어 낸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영화까지 흥행에 성공한다면 당분간 충무로의 제작 트랜드가 분명히 바꿀 것이다”고 전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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