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메모리 강국’에서 진정한 ‘반도체 강국’으로 간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60%, 시스템 반도체는 4%에 그쳐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4-24 오후 8: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반쪽’ 짜리 반도체 강국이었던 한국이 진정한 반도체 산업 패권에 도전한다. 그동안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60% 점유율로 세계적인 입자를 자랑했지만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4.1%에 불과했다.
 
이는 최고의 호황과 최대의 위기를 동시에 불러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년간 유례없는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경고등이 커졌다. D램 가격은 지난해 9월 최고가보다 44%나 떨어졌고 낸드플래시는 2017년 8월(5.78달러)보다 29% 빠졌다. 때문에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하락했고 25일 실적을 발표하는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도 지난해 1분기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과 사업 포트폴리오 위험 분산을 위해 시스템 반도체 사업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 변동성이 큰 반면 시스템 부문은 시황의 부침이 적다. 시장 규모도 메모리(1658억달러)의 2배에 달하는 3109억달러 수준(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이다. 앞으로 5년간 연평균 4.8%씩 성장해 2022년 시장 규모가 3747억달러(약 4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률(0.8%)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인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정보를 해석·계산·처리하는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에는 200∼300개가 쓰이지만, 자율주행차에는 1000∼2000여개가 들어간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 기업들이 얼마든지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 동안 세계 시스템 반도체는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실리콘밸리 태생의 IT업체들이 주도해왔다. 미국이 60%(시장조사업체 IHS)로 독보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12.9%)이 그 뒤를 따른다. 중국도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시장 점유율을 2013년 3.1%에서 지난해 5.0%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우리나라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투자를 집중해왔다.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한 설계 전문가 양성에도 한계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인력을 메모리 사업부로 이동시켰다. SK하이닉스는 2004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설계와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담당하던 매그나칩 반도체를 매각했다. 매그나칩 반도체는 인수합병 시장을 전전하면서 또다시 매물로 나온 상태다. 2001년부터 파운드리에 투자했던 DB하이텍은 수요 부진과 지원 정책 미비로 인해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24일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방안은 기존 메모리 반도체 편중현상을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중에서도 파운드리에 방점을 찍었다. 파운드리는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도를 가지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후공정 영역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퀄컴)와 CPU(인텔), 이미지센서(소니) 등의 선두 주자들의 입지가 공고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중기적으로 1위를 노려볼 수 있는 분야가 파운드리라는 계산에서다. 
 
삼성전자와 세계 1위 대만 TSMC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7.4%에 그쳤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TSMC(48.1%)에 이어 점유율 19.1%(2위)까지 올랐다. 현재 1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미세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삼성전자는 TSMC를 제치고 극자외선(EUV) 기반 7나노를 통한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했고 5나노 파운드리 공정 개발에도 성공했다.  
 
AP와 이미지센서, 자동차용 센서 등을 직접 설계하고 있어 수직계열화에 유리한데다, 국내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에 팹을 개방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마련하는 성과도 이룰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특정 업체들의 입지가 굳건한 상황에서 1위를 할 수 있는 분야를 파운드리로 정한 것 같다”면서 “내부 시스템 반도체 물량을 소화할 수도 있고 국내 팹리스 업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일석이조 효과”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국내 다른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 자회사 SK하이닉스 시스템IC를 설립하며 사업 강화에 나섰다. 시스템IC는 설립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중국 우시와 홍콩 등지에 합작회사를 설립하며 고객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최근에는 15년전 매각했던 매그나칩 반도체를 인수해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는 업계 예상도 나오고 있다. DB하이텍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시스템 반도체 특징에 맞춰 중소 팹리스 업체들의 물량을 적극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제품, 공정 등의 다양화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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