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시스템 반도체’ 승부수…삼성 미래 이끈다


불확실성 해소하고 삼성 미래 청사진 제시…정부의 일자리·투자 정책 화답 측면도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4-24 오후 8: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삼성전자가 24일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이뤄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업적을 시스템 반도체까지 넓히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9년 회사 창립 40주년을 맞아 이 회장이 내놨던 비전 2020 이후 10년 만에 나온 것으로, 삼성전자가 목표를 달성할 경우 이 부회장의 최대 공적이 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초일류 기업 100년’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담은 ‘비전 2020, 미래 사회에 대한 영감, 새로운 미래 창조(Inspire the World, Create the Future)’를 발표했다. 2020년까지 한해 매출 4000억달러(당시 기준 약 473조원)로 전 세계 IT업계에서 압도적 1위에 올라서는 동시에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체적인 목표치도 제시했다. 내년 매출 전망치는 약 240조원 수준으로, 목표 도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TV, 휴대폰 등 주요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부회장의 비전 2030은 핵심 산업인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 비전 2020의 종료 시점을 앞두고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에서 초격차 전략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IT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경영이념까지 포함했던 비전 2020과는 차이가 있지만 신성장 동력 확보와 국가경제 기여 등의 취지는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나노시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과 함께 로비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에게 이번 반도체 비전 제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14년 5월 이 회장의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은 2016년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며 그룹 총수로서 첫 발을 뗐다. 이 회장의 ‘신경영’을 대체할 화두로 ‘뉴삼성’을 앞세우며 삼성의 미래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듬해 이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구체적인 계획은 무기한 지연됐다. 삼성전자를 먹여 살릴 투자 결정도 멈춰버렸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국내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해외 일정을 소화하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했다. 하지만 올해는 행동반경이 크게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물론, 주요 사업장을 방문한 정계 인사들에게 사업 현황과 목표를 직접 설명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의 방한 때도 경제외교관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다.
 
이날 비전 2030은 이 부회장이 그동안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전면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핵심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 하락으로 인해 올해 1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하반기면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침체국면이 예상보다 길게 지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 실적을 받치는 또 다른 축인 스마트폰 사업은 지난해 전반적인 스마트폰 시장 성장 둔화, 신제품 흥행 저조 등으로 지난해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는 갤럭시S10으로 재기의 계기를 마련하는 듯했지만 갤럭시 폴드 디스플레이 결함 문제로 다시금 위기에 봉착했다. 이런 때에 “진짜 실력이 나온다”고 말하며 미래 먹거리로 시스템 반도체를 제시한 이 부회장의 결정은 삼성에 나아갈 길을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시스템 반도체 육성 방안은 정부의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한 측면도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약 20%를 차지한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해 한국 수출 버팀목인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은 5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정부의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의지에는 이 같은 허약체질을 개선해보자는 뜻이 담겼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현상을 완화하는 방안도 신속히 내놔주시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오는 25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비메모리 반도체와 바이오 등을 아우르는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은 삼성전자의 비전과 시너지를 나타낼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계획으로 42만명의 간접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프라와 설계자산 공유로 인해 국내 중소 팹리스 지원과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나 국내 투자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경직됐던 삼성전자와 정부도 화해와 소통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