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증권시장의 잃어버린 20년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19-06-11 오전 1:00:00

정확히 말해서 20년이 지난 것은 아니다. 흩어져 있던 증권거래소, 코스닥시장과 선물거래소를 하나로 합친 시기가 2005년 1월이기 때문이다. 그때 글로벌 자본시장의 기치를 내걸고 한국거래소로 통합한 후 기업공개(IPO)와 상장을 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홍콩과 싱가포르, 나아가 일본의 JPX를 제치고 동북아 금융중심지가 됐을 수도, 못됐을 수도 있겠지만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틀림없다.
 
원래 나라마다 각각 있었던 증권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지난 1990년대 초중반이다. 당시 거래소의 지배구조는 회원이 소유하는 비영리법인이었다. 그러다 스웨덴에서 증권거래소를 영리목적의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식을 상장하는 이른바 탈상호화(demutualization)가 시작됐다. 이어서 헬싱키, 암스테르담 등의 거래소가 뒤따르고 미국에서도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나스닥과 뉴욕거래소가 주식회사로 전환한다.
 
공적법인이던 거래소가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하나씩 있던 거래소가 영원히 그대로라면 자기 안방을 독점하면서 편했을 텐데 엉뚱하게도 북구 유럽에서 혁신이 시작되었다. 더 효율적인 시장의 제공, 규모와 범위의 경제, 거래비용의 절감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혁신을 통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생소하게도 거래소 비즈니스의 혁신을 시작한 스웨덴 거래소는 나스닥과 합병해 지금 나스닥OMX그룹에 속해 있다.
 
북유럽의 중소 거래소였던 스웨덴 거래소는 원래 스톡홀름 시내에 있었으나 항만에 있는 과거의 포드자동차 공장자리로 옮기면서 친환경 건물 리노베이션과 이케아 가구로 단장한다. 이어서 중소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을 시작했다. 주변의 작은 나라인 덴마크, 아이슬란드는 물론 노르웨이, 핀란드를 포함하고, 공산권 몰락 이후 독립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거래소를 네트워크로 묶은 노렉스동맹(Norex Alliance)을 창설한 것이다.
 
노렉스동맹은 작은 나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거래와 결제 방법을 일치시키고 IT시스템을 공유하기 위해 단일 플랫폼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스웨덴의 OM그룹은 세계적인 거래시스템을 개발했고 지금까지 글로벌 메이저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을 주도하던 스웨덴과 비슷한 규모의 노르웨이 사이에 갈등 요인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IT인프라 구축을 OM이 맡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를 해결하는 것도 혁신적이었다. 그것도 대부분의 중소 거래소가 겪고 있던 투자자의 신뢰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정한 시장가격과 체결은 노렉스동맹 거래소에 제기된 큰 문제였고 언론에서 빈번하게 제기하던 이슈였다. 노르웨이 거래소는 무명이던 호주의 스마트감시시스템(SMARTS)을 도입해 플랫폼을 구축한 후 OM과 동맹 내 각 거래소에 배포하고 이를 언론과 일반에 공개했다. 스마트감시시스템은 뛰어난 직관적 비주얼로 구성돼 보는 사람의 탄성을 불러 일으키며, 현재 나스닥OMX그룹의 주력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글로벌 증권시장에서는 스웨덴에서 시작된 변화가 확대돼 거의 전쟁의 양상으로 치달은 바 있다. 뉴욕거래소가 유럽 통합거래소와 합병해 NYSE유로넥스트가 됐다가 신생 거래소에 인수되는가 하면 시카고의 상업거래소, 상품거래소(CBOT)와 옵션거래소(CBOE)가 합쳐져 CME그룹이 탄생했다. 유럽의 강자 런던거래소는 한때 시장의 매물로 나올 정도였다가 독일거래소(DB)에 인수될 뻔했다. 지금 런던거래소는 금융파생거래소(LIFFE)와 이탈리아 거래소를 합병하고, 스리랑카의 밀레니엄IT를 인수한 후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증권시장은 글로벌 변혁과 완전히 동떨어진 고립의 길을 걸어왔던 것일까?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외국 투자자의 현금인출기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우리 시장은 개방돼 있다. 안타깝게도 고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몇 년 전 맥킨지컨설팅이 지적한 것처럼 다양한 상품 포트폴리오로 투자자의 니즈에 대응하고 있지만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는 더욱 늘어나고 국내시장은 여전히 외국인에게 좌우된다. 
 
한때 거래소 지주회사를 추진했던 것도 무산된 지금, 20년을 잃어버린 셈치고 동네 시장으로 남을 것인가. 지금까지 법과 국민 정서에 기대어 보호받았지만 새로운 혁신이 몰아닥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대형마트가 지역상권을 먹는 형국처럼 휩쓸릴 수도 있어 보인다.
 
전 코넥스협회 상근부회장 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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