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금융 자회사 대표, 채용 청탁…아들 은행 면접점수 조작해 합격


청탁실행 은행간부 집행유예 선고…청탁 주체는 버젓이 대표자리 꿰차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02-0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한나 기자] 한 대기업금융 자회사 대표가 자신의 아들을 시중은행에 채용청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청탁을 받아 실행한 은행 간부는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청탁을 한 사람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취업준비생을 비롯한 구직자들이 지난 1월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20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를 찾아 블라인드 면접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6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한 시중은행 간부들은 채용비리 혐의로 1심에서 무더기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문에 따르면 대기업금융 자회사 김모 대표는 모회사 자금 담당 상무로 재직하던 2014년 상반기 당시 한 시중은행 부행장에게 자신의 아들 A씨의 채용을 청탁했다. 
 
그 결과 A씨의 1차 면접 점수는 조작됐다. 1차 실무자 면접 결과 A씨는 '지원동기가 불명확하고 본인의 주장이 강해 팀워크를 저해함'으로 기재돼 DC등급을 받아 탈락대상이었다. 이 은행은 면접 평가에 따라 지원자들에게 AA부터 DD까지 등급을 부여했다. AA등급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하지만 이 은행은 A씨에 대해서만 별도의 리뷰 절차를 거치도록 실무자에게 지시해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 실무자가 재검토한 결과에서도 '표정이 어둡고 딱딱함, 면접시 태도 매우 불량' 등 사유로 '불합격 DC 등급'으로 기재됐다. DC등급에도 재차 A씨에 대한 합격 지시가 내려와 A씨의 면접 결과는 BB로 임의 상향됐다. 부정 통과된 것이다.  
 
이에 지난달 22일 1심 재판부는 청탁을 실행한 부행장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같은 은행 인사부장으로 재직한 김모씨와 이모씨 등도 징역형에 집행유예, 벌금 등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작 채용을 청탁한 김 대표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대표직을 수행 중이다. 채용 비리의 시작이 부정 청탁임에도 청탁 당사자들은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취업청탁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형법123조), 뇌물(형법129조) 등 취업청탁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있지만 명시적 언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증거로 채택되기 어렵다. 대부분 채용 청탁은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뤄져 처벌 증거를 수집하기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채용 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청탁자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매번 청탁자는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는데 소환 조사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는 연이어 터진다"며 "청탁자 명단을 공개하는 등 법과 제도적 장비가 이번 기회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한나 기자 liberty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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