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이런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면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02-12 오전 5:21:16

1. 34살의 젊은 의사는 동네에서 7명의 독감 환자들을 목격한다.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 자신이 어릴 적 보았던 바이러스 전염병과 유사한 증상이었다.
 
 
그는 환자들의 진단 결과를 인터넷에 올려 대중과 공유했다.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을 알린 것이다.
 
 
그런데 닷새 뒤 그는 ‘관계 당국’에 소환돼 경고를 받았다. “사실무근의 말을 전파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훈계서에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무근’이었던 동네 전염병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다. 첫 발병 이후 50일도 되지 않아 1000여명이 죽었고, 감염된 사람만 4만2000명을 넘어섰다. 그 의사도 숨졌다.
 
 
안타깝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동네에는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시민기자를 자처했다. 그 나라의 주류 언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입원하려고 며칠을 기다리다 병원 밖에서 쓰러진 사람, 늘어선 임시 병상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운 환자들, 병원과 장례식장, 임시 격리병동 등의 촬영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 13일 뒤 그는 실종됐다. 관계 당국은 그의 가족들에게 “강제 격리됐다”고 통보했지만, 그의 행방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2. 대형 유람선 한 척이 2주간 4개국을 거쳐 마지막 항구에 도착한다. 승무원과 승객은 모두 3711명. 그러나 이들은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관계 당국이 하선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유람선에서 전염병 환자가 나왔다는 이유에서였다.
 
 
관계 당국은 승객들의 감염여부를 ‘찔끔찔끔’ 조사하기 시작했다. 1주일간 하루 60명꼴. 그동안 승객들은 배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최소한의 물과 음식만이 제공됐다. 죄수들과 다를 게 없는 생활. 한 승객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통조림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환자들도 늘어났다. 고작 439명을 조사했을 뿐인데 135명의 감염이 확인됐다. 언제 끝날지 모를 나머지 3272명의 승객들에 대한 진단결과가 아직 남아 있다. 앞으로 확진자가 추가될 때마다 배에 감금될 시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결국 멀쩡했던 승객들까지 몽땅 환자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의 인권은 배와 함께 갇혔다.
 
 
관계 당국이 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나라에서는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5달 후면 올림픽이 열린다.
 
3. 두 개의 이야기는 이웃한 두 나라,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면 언론, 특히 소위 보수언론이 늘 그렇듯 “이게 나라냐”며 정부와 정권을 앞 다퉈 물어뜯었을 이야기다.
 
모든 재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정보의 통제 혹은 은폐’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는 골든타임을 놓쳤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도 안 되는 상황까지 몰렸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정치 지도자와 그 추종집단의 탐욕과 무능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에게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이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여론과 언론을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어디서 많이 본 행태 아닌가. 6년 전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에서 말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 때의 뼈저린 교훈을 잊지 않았다. 최소한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일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의 환자라도 완쾌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분투하는 우리 의료진과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승형 산업1부장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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