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간)영화 속 수직과 수평의 알고리즘


‘더 플랫폼’이 그리는 수직의 상승과 추락, 그리고 봉준호 세계의 계급 사회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05-12 오후 4:24:38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현대 사회가 ‘발전’이란 단어를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계급’이 사라진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지배와 피지배,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이란 단어가 중세 이후 생겨난 새로운 계급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쟁사회인 자유시장주의가 지금의 우리 삶의 기본 맥락이 된 현실에서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지만 한 편으론 분명히 존재하는 권력의 구분이고, 경계다.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힘, 바로 계급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리고 바라보는 ‘계급’은 다양하면서도 매력적이고 또 풍성한 얘기를 담고 있다.
 
수직의 경계
 
‘계급’을 그리는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봉준호 감독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그의 출세작 ‘살인의 추억’ 그리고 ‘설국열차’와 ‘기생충’까지. 여러 영화에서 계급을 그렸다. 그가 그린 계급의 핵심은 공간이었다.
 
‘플란다스의 개’의 지하실, ‘살인의 추억’의 ‘취조실’ 그리고 ‘기생충’의 지하실. 기본적으로 수직 구조의 배열, 그리고 그 배열에서 존재하는 지하실. 이들 영화에서 지하실은 음습하고 어둡고 지배를 받는 공간이다. 힘을 가진 유산계급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공간으로 나온다. 아무도 모른다.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얘기는. 그 공간은 결국 각각의 영화에서 얘기를 만들어 내고, 얘기의 핵심을 풀어낼 열쇠가 되며 그 열쇠는 결말로 달려가는 동력이다.
 
지상과 지하를 구분하는 경계선, 그리고 그 경계선 밑에 있는 지하실. 아시아 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 동시 수상작인 ‘기생충’은 이 경계와 공간을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섬뜩하게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지하실은 모든 사건의 열쇠가 된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버티며 생존하는 공간. 그 공간이 담은 본능은 처절하다. 영화에서 ‘문광’(이정은)이 남편 근세(박명훈)의 존재를 공개하는 장면은 영화 자체의 톤 앤 매너를 뒤 바꿔 버리는 전환점이다. 이 지점부터 모든 것이 뒤 바뀐다. 선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로 나뉜 계급. 그 계급에 따라 삶을 나누고 바라보는 시선과 방식.
 
이런 점은 13일 개봉하는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분화된다. 30일마다 한 번씩 뒤 바뀌는 수직 감옥. 몇 개의 층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깊고 깊은 공간.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 ‘그리고 떨어지는 사람’. 우리 삶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기생충’과 ‘더 플랫폼’ 그리고 다른 영화에서도 존재하는 지하실. 기본적으로 인간 본연의 본능이 제어된 채 버텨야 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버팀은 생존이고, 방식이다. 영화에서의 ‘지하실’은 수직 체계의 뿌리를 지탱한다. 하지만 본연의 존재 의미는 그저 우리 삶의 현실을 반영한 외면이고 직시일 뿐이다.
 
영화 '설국열차' 스틸
수평의 구조
 
수직은 상승과 추락의 개념만 존재한다. 계급 사회의 이면을 그려내는 데 이 보다 더 적절한 공간 설정은 없다. 하지만 계급 사회를 그린 영화에서 수평의 구조도 존재한다. ‘설국열차’가 대표적이다. 봉준호 감독이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스크린에 옮긴 ‘설국열차’는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10부작 오리지널 시리즈로 재탄생됐다.
 
영화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모두 수평의 세계관이다. 무려 1004개의 객차가 등장한다. 꼬리칸부터 맨 앞의 엔진칸까지는 계급을 상징한다. 꼬리칸은 피지배계층, 최하층민이다. 그리고 앞칸으로 갈수록 환경은 변화한다.
 
수직 구조가 상승과 추락을 그렸다면 수평의 구조는 직전이다. 계급 사회의 이면을 깨트리기 위해선 무언가를 깨 부셔야 한다. 하나의 객차를 지날 때마다 주인공은 각성한다. 세계관이 달라진다. 반면 그들을 막기 위한 지배계층은 처절하게 대항한다. 막아야 한다.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오는 것을 막아야 지켜낼 수 있다. 반면 막아서는 것을 넘어야 얻을 수 있다. ‘설국열차’의 기본 플롯이다.
 
수직과 달리 수평은 곧게 뻗어있다. 수직은 추락에 대한 불안감이 자욱하다. 반면 수평은 불안보단 불쾌함이 크다. 넘어설 때마다 달라지는 세계관 속에서 그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감성적 충돌을 일으킨다. 혼란이다. 계급 사회에서 계급을 구분하는 경계와 차이가 갖는 혼란과 불쾌함은 기득권을 말하기도 한다. 가진 자의 ‘기득’은 못 가진 자에겐 환상이다. 수평의 구조는 그 환상을 그려내고 그 환상이 가진 허울의 진실을 들춰 내는 데 가장 적절한 공간 구성이다.
 
13일 개봉하는 ‘더 플랫폼’부터 앞서 계급 사회를 그려낸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그리고 수직과 수평의 구조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만들고 들춰 낸 여러 영화들이 존재한다. 이들 영화를 비교하며 바라보는 재미도 지금의 우리 사회와 앞으로 이어질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변화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듯하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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