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기승전'투기'탓만 할 건가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05-20 오전 6:00:00

이종용 증권데스크
1분기 실적공시 마지막날인 5월15일, 대형 증권사들이 마감날에 맞춰 줄줄이 실적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정면으로 맞은 대다수 증권사는 적자를 겨우 면한 성적표를 내놨다.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곳도 있다.
 
경영진 체면을 구길까 실적 발표를 언제 할지 서로 재다가 마감일에 닥쳐서야 부랴부랴 발표했다는 뒷얘기는 웃기면서도 안쓰럽다. 증권사 실적 희비를 가른 것은 글로벌 증시 급락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주가연계증권(ELS)이다.
 
특히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국내 자본시장에서 ELS는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ELS 발행액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대형 증권사 대부분은 자기자본을 초과하는 ELS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ELS 판매량이 무조건 많다고 해서 부실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1% 미만의 확률이라는 코로나발 폭락장을 단단히 준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포진한 증권사들도 '투자 실패에 대한 손실'은 피할 수는 없는 셈이다.
 
같은 날 이달 15일, 금융위원회는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 시장 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대책을 보면 무분별한 투자를 막기 위해 기본예탁금 도입, 사전 온라인교육 의무화 등 진입 문턱을 만들었다.
 
이 같은 대책이 나온 것은 배경은 코로나사태 이후 레버리지 ETF·ETN 같은 고위험 상품에 투자가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급락 이후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원유 관련 상품 거래가 대폭 증가했지만, 증권사들이 투자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괴리율이 대폭 늘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까지 수차례 소비자 위험 경보를 발령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규제책을 꺼내든 것이다.
 
과도한 투기수요와 특정상품 쏠림 현상이 원유ETF·ETN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증권사나 운용사들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엔 이례적인 투기 수요였다며 슬며시 증시와 투자자 탓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투자흐름에 "잘못된 투자 전략"이라며 훈수를 두기 바쁘다.
 
물론 고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 부족, 방향성 보다 기대감에 기댄 투자 전략 같은 투기행태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투자처에 돈이 몰리는 것을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공격적으로 ELS를 늘렸다가 실적 폭탄을 맞은 것처럼 경제 추제들은 완벽하게 이성적이지 않다. 금융기관들은 투자자와 시장 탓을 하지만 투자자들은 그들의 위험관리 능력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지난달 초부터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뿐만 아니라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이미 유가 폭락의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의 적극적인 대응은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증권사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마이너스 유가를 인식하지 못해 먹통을 일으키기도 했다. 괴리율이 사상 초유로 치솟는 동안 금융당국은 최고 수준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한 게 다였다.
 
빚을 냈든 아니든 투자자들이 그들의 돈을 맡기는 것은 금융기관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1년간 DLF나 라임자산운용 사태처럼 자본시장이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당국을 비롯해 증권사, 운용사가 신뢰를 잃는다면 투자자들은 자본시장에서 발을 빼고 말 것이다. 금융당국이나 금융투자회사들이 유례 없는 일로 꼽히는 코로나19에 걸맞는 시스템을 갖췄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종용 증권데스크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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