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돌멩이’, 정말 겨우 그것 때문에 희망마저 뺏어갔나


8세 지능 30대 남자, 10대 소녀의 관계…사회적 시선 ‘왜곡’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10-07 오전 12:00: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돌멩이’.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겠다. 이 영화 속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겠다. 이건 완벽한 타살이다. 물리적 살인이 아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살인이다. 죽음으로 내몰았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벼랑으로 밀고 밀어 버렸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말한다. 입이 아닌 시선이다. ‘우린 네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벼랑 끝에 내몰렸고, 한 손으로 위태롭게 그 끝을 잡고 버틴 이 남자는 외치고 있었다. 말이 아닌 눈으로. ‘살고 싶다. 하지만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 남자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철저하게 파괴되고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철저하게 짓뭉개졌다. 그리고 영화가, 아니 이 현실이 말한다. 그 죽음의 과정을 바라보며너흰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이건 방식의 문제도 아니고 과정의 문제도 아니다. 시작부터 잘못됐다. 가장 완벽하게 잘못된 시작이다. 그 잘못은 거꾸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고, 삶에 대한 괴이한 접근 방식이며, 어떤 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오히려 강화시켜버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저럴 수도 있다. 도대체 발달장애인은 언제까지 정의와 밝음 그리고 선()을 위해 쓰고 버려지는 도구여야 하나.
 
 
 
돌멩이에선 혼자 사는 발달장애인 석구(김대명)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석구와 친구가 된 가출소녀 은지(전채은)가 있다. 8세 정도 지능을 가진 30대 석구와 10대 소녀 은지의 관계는 청소년보호쉼터 소장 김선생(송윤아)의 걱정을 만들어 낸다. 석구의 실질적 보호자 노신부(김의성)괘념치 말라며 김선생의 걱정을 무마시킨다. 하지만 사건은 정말 우연하게도 일어났다. 석구가 운영하던 정미소에서 은지가 사고를 당한다. 은지를 발견한 석구는 응급처치를 한다. 8세 지능의 석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뻔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김선생이 발견한다. 이제 석구는 동네 모두가 사랑하는 밝은 청년 석구가 아니다. 추악한 성추행범이다. 노신부는 끝까지 석구를 믿고 그를 구명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김선생 시선은 단단하다. 석구를 향한 그의 악다구니는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욕지기로 가득하다.
 
사실 진짜 고통은 석구와 은지 사건 이후부터다. 동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어 버린다. 살갑고 사랑스럽던 그들의 시선은 일순간에 돌변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야 옳다. 이건 감성적 판단이다. 하지만 이성이 의심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모두는 스스로 이성을 지워 버렸다. 어릴 적 친구들조차 그를 밀어냈다. 석구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다 못해 날카로운 칼처럼 꽂아 버리는 비수 같은 말들은 관객들의 이성을 작동시켰다. 관객들은 안다. 석구는 잘못이 없단 걸.
 
 
 
정말 놀라운 점은 사건 이후 모두의 시선이 사실은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과연 김선생은 자신의 확신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동네 사람들, 특히 그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정말 석구가 그랬다고 믿는 것일까. 노신부 탄원서 요청에그래도 한 건 맞죠란 말을 던진 그들이 과연 처음부터 자신의 곁을 석구에게 내주긴 했던 것일까.
 
영화는 사건 이후부터 상식과 비상식 그리고 의심과 확신을 넘어 믿고 싶은 것만 믿어버리는 대중심리가 어떻게 확산돼 가는지를 가감 없이 그려낸다. 그 중심에 이 사회 약자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발달장애인이 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은 거리에 던져진 진흙처럼 짓뭉개진다
 
 
 
영화돌멩이믿음의 불완전성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연출 의도와 방식은 이 지점을 오롯이 따라간다. 하지만 따라가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소재, 그리고 그 소재를 소비하는 방식, 그 방식의 폭력적 시선에는 결코 동의를 할 수 없다. 믿음의 불완전성이란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영화는 한 사람을 완벽할 정도로 파괴한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인 석구를 등장시켜 그 선명성을 더 진하게 한다.
 
그 방식이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위험하고 끔찍하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단계를 밟아 짓밟히는 주인공에게 집중한다. 주인공 석구는 정해진 길만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차츰차츰 파괴돼 가는 석구는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그 고통은 관객들에게도 전달된다. 관객은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주체이기에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믿음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석구와 석구를 제외한 모두를 시험대에 올린 채 일종의사회적 타살게임을 부추긴다. 이 모든 상황의 진실은 필요 없다. 상황이 필요하니 그 상황에 맞는 사건을 주입시킨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관객의 심리적 압박과 고통은 상상을 넘어선다하지만 이 영화가 간과한 진짜 지점은 이것이다. 주인공 석구의 존재를 말살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의 주체가 만약 발달장애인이라면. 이 물음에 영화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 인가.
 
영화는 에둘러 이 상황이 창작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그 창작 속에서 영화는 이 세상의 폭력을 고발한다. 힘없고 나약하고 사실은 가장 순수한 마음을 지닌 한 사람을. 그 반대에 이 세상의 모든 이들과 동일한 비장애인, 이 영화 속에서 말하는 일반인들을 두고. 영화 속 모든 이들은 석구를 두고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또 다른 편견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성의 상실을 보인다그럼 돌멩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이성은 어디로 작동 할 것인가. 석구인가, 석구를 제외한 다른 모두의 시선인가. 그럼 조금 더 바꿔 질문을 해보자. 이 영화가 원하는 관객은 누구인가. 석구와 같은 발달장애인인가. 아니면 석구를 제외한 모두와 같은 우리들인가.
 
 
 
희망을 잃어버린 채 스크린을 바라보는 석구의 눈빛이 너무도 간절했다. ‘돌멩이는 석구를 제외한 다른 모두와 같은 우리들만을 필요로 한 영화이고 싶은 것일까. 영화 속에도 석구는 있고, 영화 밖에도 석구는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볼 석구도 있고, 이 영화를 봐도 이해하지 못할 석구도 있다.
 
그럼에도 단언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이 영화는 스크린 안쪽에서도 밖에서도 석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망마저 뺏어갔다. 석구를 제외한 우리 모두의 잘못을 깨우치기 위해. 그것 때문에 현실의 석구는 지금도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혹시 정말 그걸 말하고 싶던 건가. 정말 겨우 그것 때문에. 개봉은 오는 15.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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